한국인은 터프(tough)하다.
아는 사람이 아니면 퉁명스럽게 대하고, 도로에 차를 세운 채 싸우고,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큰소리치는 일이 다반사다.
한국인은 마치 언제든 화를 낼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말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통령조차 국민과 언론이 뭐라든 막말을 쏟아낸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는 동방예의지국과 거리가 멀다.
세계인 눈에도 한국인은 터프하게 비쳐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폐허의 땅에서 일어나 단기간에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대국을 이뤘고, 한 해 3000억달러어치의 상품을 외국에 내다파는 억척스러운 민족이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소니를 눌렀다는 보도에 일본인 자존심은 구겨졌다.
경제만 그런가. 스포츠에서도 한국 축구는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일궜으며, 미국 여자골프대회는 아예 한국선수 판으로 변했다.
음식도 세계 최고로 매운 것을 좋아한다.
김치찌개를 `시원하다`며 먹는 민족은 한국인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터프하다고 좋은 건 아니다.
현대는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기는 연성시대(軟性時代)다.
남성적인 강인함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더 인정받는다.
무엇보다도 경성사회(硬性社會)는 행복과 거리가 있다는 걸 알아야겠다.
한국인의 터프함은 실은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해 말 미국 AP통신은 한국인 5명 중 4명(81%)이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이 수치는 주요 조사대상 10개국 중 가장 높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스트레스 덩어리다.
예를 들어보자.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는 전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시를 향한 경쟁이 시작돼 대학입학 때까지 장장 12년간 학생과 학부모가 그 스트레스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물론 대학 입학 후에도 4년 내내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남자들은 병역 스트레스까지 겪어야 한다.
직장에서는 직장 스트레스가 기다리고 있다.
기업들의 치열한 생존경쟁 때문에 여유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영어 역시 전 국민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스트레스 요인이다.
결혼 스트레스도 있다.
사랑보다도 학벌과 재력을 유독 따지는 한국적 풍토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경제적 스트레스가 따라온다.
세계적으로 높은 주거비와 생활물가 때문에 살기가 힘들고 경조사비 등 체면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음주와 흡연은 건강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별로 없는 안보 스트레스도 있다.
남북 분단에 따른 원초적 스트레스다.
요즘에는 대통령 스트레스까지 생겼다.
역대 대통령들이 강압통치로, 부정부패로, 무능으로 국민에게 준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닌데 지금은 대통령 입에서 또 무슨 말이 나올지 전 국민이 조마조마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추구권을 너무 잊고 있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한다.
내가 까닭없이 남을 불편하게 했다면 그 사람의 정신적인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며 남이 나에게 그렇게 했다면 나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국민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는 일도 삼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좀 더 성숙한 국민의식이 필요하며 각자 자기 위치에 걸맞은 품격을 갖춰야 할 때다.
품격은 교양에서 비롯되고 교양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전제로 한다.
왜 모든 문제를 다툼으로만 해결하려 드는가. 개인끼리, 집단끼리, 정치인끼리 서로 미워하고싸우는 한 이 나라에는 평화가 없다.
부동산 문제로 날을 지새며, 부자에게 손가락질하는 나라에는 행복이 없다.
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진보니 하며 소득없는 논쟁을 벌이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치열한 경쟁은 불가피한 현실이지만 경쟁 못지않게 경쟁에서 처진 사람들을 위한 보살핌도 있어야 한다.
미국사회도 잘 들여다보면 경쟁이라는 앞바퀴뿐 아니라 봉사와 기부라는 두 개의 뒷바퀴가 함께 끌어간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우리도 딱딱한 사회에서 부드러운사회로 이행하려면 봉사정신과 기부문화가 활성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말을 곱게 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는 바로 그 출발점이다.
[한명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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