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남매 美명문대 입학시킨 어머니 황경애씨의 자녀 교육법

길벗 道伴 2008. 10. 20. 12:11

남매 美명문대 입학시킨 어머니 황경애씨의 자녀 교육법
출처 : [아이잘키우기] 3남매 美명문대 입학시킨 어머니...  

“한국식과 미국식 혼합 교육법으로

10억 장학생 만들었어요”

 

미국에 사는 황경애씨는 잘 지은 자식 농사로 남부러울 게 없다. 세 자녀 모두 미국 명문대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이미 장래도 창창하다. 그렇다고 자녀들이 특출난 영재나 천재인 것도 아니다. 교육에 과한 투자를 할 만큼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그녀에게는 오직 확고한 자녀 교육법이 있었을 뿐이다.

 

성공한 3남매 뒤에 든든한 한국 어머니


 

자식이 잘 되면 부모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바로 황경애씨(47) 이야기다. 그녀의 3남매는 ‘공부 잘하는 한국인 학생’이라는 타이틀로 몇 번이나 국내 일간지를 장식했다. 첫째 최은혜양(22)은 명문 사립 보스턴대 국제정치학과를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또 미 정부 장학금을 받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유학도 마쳤다. 현재는 미국 10대 법률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둘째 최성찬군(20)도 보스턴대 국제정치학과 4년 전액 장학생으로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며 정부에서 주는 ‘펠로우십 장학금’ 10만 달러도 받았다. 미 전역에서 단 30명의 학생을 선발해 해외로 연수를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외교관이 되는 프로그램의 첫걸음으로 통한다. 성찬군은 자신의 뿌리를 좀 더 알고 싶어 곧 서강대로 역유학을 올 예정이다. 그리고 막내딸 최은희양(18) 역시 4년 장학생으로 하버드대에 입학했으며 박사학위 과정 전 비용을 지원하는 ‘빌게이츠 밀레니엄 장학금’ 1백만 달러(10억원)를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붙은 황경애씨의 별명이 ‘백만불 장학생 어머니’다. 세 자녀들이 받은 장학금 총액만 따져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교육이 가장 큰 투자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혹여 집안에 ‘천재 유전자’가 흐르고 있는 건 아닌지. 한 집안에서 자녀 모두가 한결같이 공부를 잘하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제 아이들은 절대 영재나 천재가 아닙니다. 저는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확고하게 믿어요. 쌍둥이라도 환경이 다른 곳에서 자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잖아요.”

황경애씨의 자녀는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교육 자료도 풍부하고 창의력을 위주로 가르치는 미국이라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더 큰 성과를 낸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그녀의 교육법이 한국 상황에도 접목할 수 있는 것들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저는 아이들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미국 학교교육에 한국식 가정교육을 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미국 교육이 좋다면 다른 학생들도 그만큼의 성과를 내야겠죠. 한국에서도 부모가 올바른 교육법을 숙지하고 활용하면 충분히 우등생으로 키울 수 있어요.”

그녀는 교육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자신도 100% 토종 한국 교육을 받고 자랐다. 황경애씨의 교육법은 세 아이를 키운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교육이란 부모가 아이가 가진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이끌어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저는 간호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미국에 왔어요. 그러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돈을 벌어야 했죠. 살림은 빠듯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것은 꼭 들어줬어요.”

그녀가 풍족한 환경에서 자녀를 키운 것은 아니다. 첫째가 열두 살이었을 무렵 남편이 국제 사기단에 휘말리는 바람에 전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혼자 힘으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남편은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자취를 감춰버렸어요. 주부였던 제가 생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죠.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했어요. 목회활동, 한인방송 일, 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현재까지도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별거 상태.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두려웠다. 그녀는 우리네의 전형적인 어머니였다. 자식을 위해 늘 희생을 감수한다.

“젊은 나이에 왜 새 출발을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나 가정을 지킨 것은 아이들이 충격받고 방황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아이들이 제게 매우 고마워해요.”

황경애씨의 세자녀. 왼쪽부터 막내 최은희, 첫째 최은혜, 둘째 최성찬.

요즘 한국 서민층도 여러모로 살기 퍽퍽하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교육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싶단다. 실제로 그녀가 고국을 방문한 이후 여러 교육 단체와 학부형들로부터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그녀는 자녀를 키우며 느꼈던 점들을 책으로 엮어내기도 했다.

“저 같은 사람도 훌륭하게 아이들을 키워냈잖아요. 아이들은 신경 써주는 것만큼 자랍니다. 그러니 교육을 가장 수익이 보장된 투자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녀는 본지 독자들을 위해 자신이 세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고 터득한 자녀교육 비법 몇 가지를 귀띔해줬다.

 

‘백만 불 장학생 어머니’ 황경애씨의 자녀 교육

1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일에 투자해라


교육이 가장 큰 투자라는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다. 나는 일로 번 돈을 모두 아낌없이 아이들에게 투자했다. 비싼 과외나 학원 강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느 날 막내가 탭댄스 발표회를 구경한 후 “엄마 나도 탭댄스 가르쳐줘. 탭댄서가 될 거야!”라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탭댄스 선생님을 모시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녔다. 또 바이올린을 켜고 싶다고 하면 그 다음날 악기를 구해줬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의 도전정신을 살려주고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 내 교육의 첫 번째 포인트다.

 

2 아이가 집안일에 적극 참여하도록 해라


이건 미국식 교육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하도록 했다. 내가 일하는 엄마라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집안일은 곧 엄마의 일이라는 편견을 심어주기 싫었다. 큰딸은 설거지, 아들은 청소, 막내딸은 빨래 개기와 정리를 하게 했다. 함께 일하면서 형제들은 더 가까워졌고 스스로 집에 대한 애착을 가졌다. 엄마는 철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 필요가 있다.

 

3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줘라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한 살이 되기 전에 그림책을 줬다. 장난감처럼 친숙해지도록 말이다. 억지로 읽으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냥 책을 건네주면 자연스럽게 읽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도 옆에서 책을 읽는 것이다. 엄마는 TV를 보면서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면 어느 아이가 읽으려 할까.

 

4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마라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숙제를 가르쳐주거나 도와준 적이 없다. 솔직히 내 엉터리 영어 발음으로는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아이는 엄마가 도와주면 무슨 일이든 노력하지 않고 엄마를 먼저 찾게 된다. 대신 나는 아이를 도서관에 자주 데려갔다. 도서관에서 스스로 찾고 공부하는 법에 익숙해지도록 말이다.

 

5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라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첫째 가족공동체의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고, 둘째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은 피곤하고 힘들더라도 목적지를 향한 기대감은 우리네 인생 여정과 닮아 있어 아이들에게 산교육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이들은 놀랍게 의젓해지기도 한다.

 

6 대화에 인색하지 마라


우리 아이들도 사춘기 시절에는 반항을 했다. 나는 일단은 참았다. 예민한 시기이므로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고 대화로 풀어야 한다. 아이들과 영화나 뮤지컬을 보며 1:1 데이트를 했다. 자연스럽게 고민 상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좋은 방법은 편지 쓰기다. 엄마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아이 책상에 올려놓는다.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면 아이도 엄마에게 편지를 쓰며 안정감을 되찾는다. 나는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개인적인 저녁 약속은 일절 잡지 않았다. 오직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7 아이의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큰딸이 유치원 다닐 때는 미국 교육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 학교 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다른 주(州)로 이사 가기 위해 학교에 전학증명서를 떼러 갔더니 선생님이 “엄마가 없는 아이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큰딸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무렵까지 소심하고 말수도 적고 학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그 사건 이후에는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면 최대한 예쁘게 치장하고 참석했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선생님들도 인간인지라 학교 활동에 적극적인 학부모의 아이들에게 더 신경 쓰게 마련이다.

 

8 실패를 가르쳐라


나는 고의로 아이가 실패하도록 유도할 때가 있다. 엄마로서 마음은 아프지만 실패도 필요하다. 한 번도 2등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전교 1등을 고수하던 막내딸을 6학년 여름 방학 동안 한국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게 했다. 한국어가 부족했기에 받아쓰기를 못하는 것은 물론, 성적은 꼴찌일 수밖에 없었다. 울고 불며 한국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끝까지 다니도록 했다. 이후 딸은 자기도 못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닫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겸손해지는 법을 알았다. 실패를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가 커서 실패했을 때 당황하고 쉽게 좌절할 수도 있다.

 

9 조기 유학을 맹신하지 마라


나는 아이들의 공부보다는 인격 형성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조기 유학을 보내면 외국어는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불안해 완전한 인격이 형성될지는 의문이다. 부모가 함께 갈 수 있는 환경이라면 모르지만 아이 혼자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주위에서 조기 유학을 온 아이들을 많이 봤다. 어딘지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고 불안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연히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사랑을 듬뿍 주고, 유학은 나중에 보내도 늦지 않는다.

 

10 체벌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져라


엄할 때는 엄해야 한다. 미국 가정은 체벌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매를 들지는 않더라도 외출 금지나 용돈 금지 같은 강경책으로 아이들 나쁜 버릇을 고친다(실제로 매를 드는 부모도 많다). 우리 옛말에 틀린 말이 없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아이를 엄하게 잡아놔야 한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사고를 친다.

 

11 외국어 교육은 어릴 때 시켜라


미국은 제2 외국어가 스페인어다. 남미 이민자들의 급증으로 모든 공공기관에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공용으로 쓰인다. 아이들에게 초등학교 1학년부터 스페인어를 열심히 가르쳤더니 지금은 완벽하게 구사한다. 경험상 어릴 때 배운 외국어는 잘 잊지 않는 것 같다.

 

12 봉사활동은 필수다


아이들에게 열 살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켰다. 그러니 남을 돕는 것이 생활이 됐다. 방학을 맞으면 낙후된 나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아이들은 이제 샤워 시설이나 화장실이 없는 나라에 가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아이가 몽골에 갔다 온 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몽골의 도시 개발을 해보고 싶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봉사활동도 공부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13 무엇보다 엄마와의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하루 종일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시키는데 이는 너무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학원을 안 다니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예민하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돼야 비로소 학교 성적을 올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