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기초과학 연구원장

길벗 道伴 2013. 3. 10. 21:20
[매경이 만난 사람]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과학기술은 창조경제로 가는 플랫폼
기사입력 2013.03.08 17:02:48 | 최종수정 2013.03.08 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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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1971년 경기고 수석 졸업, 그해 대입 예비고사와 서울대 본고사 수석. `전국 수석=법대`가 공식이었던 당시에 그는 물리학과를 선택했다. "법학은 이미 존재하는 재화나 권리를 나눠주는 것이지만 이과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미국 유학을 가서도 공부에서는 승승장구했다. 스탠퍼드대학원 물리학과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는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지만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다. "미국 학생들도 별것 아니구나"라는 자만심도 들었다. 그러나 이내 `쓴맛`을 봐야 했다. 미국 학생들은 논문 주제를 정하기 위해 수시로 지도교수를 만나 아이디어를 내고, 아이디어가 교수에게서 퇴짜를 맞으면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곤 했다. 동양인 눈으로 볼 때는 좀 뻔뻔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마침내 교수에게서 "그것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대답을 얻어내고 연구에 앞서 나갔다. 하지만 그는 6개월 동안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정답이 있는 문제는 잘 풀었지만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데는 약했던 것 같다." 그가 내린 자가 진단이었다.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패스트 폴로(빠른 추격자)`는 잘하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하는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창조경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새로운 경제 발전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가 제시됐고,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를 신설한다. 또한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창조경제의 양대 기반으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오세정 원장은 "기초과학은 남이 안 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기초과학이라는 것이 성과 자체도 중요하지만, 창의사회로 가는 커다란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2011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을 목표로 설립됐다. 모두 50명의 연구단장을 뽑아 각 단장에게 연간 약 100억원 규모 연구비를 지원하는 한편 연구자에게 자율성을 주고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해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오 원장은 미래부가 창조경제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기초과학연구원은 창조경제의 `시험대(test bed)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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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부 신설에 대해 평가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모방사회에서 창조사회로 가야 한다. 미래부의 방향은 잘 잡았다. 그러나 창조사회는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여러 제도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창조사회, 창조경제를 위한 정부 부처이다보니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매몰될 수도 있다. 그쪽으로 치우쳐 버리면 취지가 많이 퇴색될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창조경제를 어떻게 정의하나.

▶상상력과 독창력을 갖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기에 제일 중요한 것이 분야별 융ㆍ복합이다.

-미래부도 융ㆍ복합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부는 옛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가 합쳐진 조직이다. 자칫 융합이 과학기술과 ICT만의 융합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다. 미래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의 본질은 ICT와 과학의 융합이라기보다 과학기술 분야 간, 과학기술과 산업, 과학기술과 문화의 융합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계 내부의 융합이 부진한 것 아닌가.

▶옳은 지적이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소통이 융합의 첫걸음이다. 조직 간의 벽, 전공 분야 간의 벽, 이런 것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해야 융합이 나온다. 남의 것을 쫓아가는 연구를 할 때는 내 분야만 하면 되지만 새로운 연구를 하려면 영역이 점점 넓어지게 돼 소통이 필수적이다.

-정치권과 산업ㆍ학계에서 미래부 영역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다.

▶방송통신 관련 문제가 불거져 미래부가 방송통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일까봐 걱정이다. 미래부라면 ICT 아니면 방송통신을 생각할 것 같다. 이것이 중요한 이슈가 돼 다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래부는 산업기술 분야를 많이 못 가져온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일자리 창출까지 이어가려면 산업기술이 중요한데, 손발이 없는 꼴이다.

-첫 미래부 장관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

▶우선 조직 안정이 중요하고 장기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나 목표를 분명히 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연구자에게 실패해도 좋다는 자율성을 줘야 하고, 관리 위주의 제도에서 벗어나 연구자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춰가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덜어줘야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에 대해 보상이 많이 돌아가도록 평가제도를 바꿔 나가야 한다.

-일자리 창출도 미래부의 중요한 임무다.

▶단기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매달리면 이것저것 부딪치는 것이 많을 것이다. 과학자가 바로 창업하기보다는 상업성 있는 과학기술 성과가 나오면 이를 특허로 만든 뒤 이 특허가 필요한 기업에 판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출범하기도 전에 미래부에서 기초과학이 홀대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교육과학기술부 때도 그랬고, 사람들의 인식(perception)과 실제 일어나는 일은 다르다. 지난 정권 때 연구비나 연구개발(R&D) 투자는 매년 10% 이상 늘었고, 장관급 조직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도 만들었다. 단기적인 ICT와 장기적인 과학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장관이 잘 이해하고 특성에 맞게 지원하면 홀대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기초과학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기초과학은 창의사회, 창조사회로 가는 커다란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기초과학은 남이 안 하는 것을 도전하는 것으로 기초과학 자체가 커다란 창조사회로 가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기초과학자는 어떤 연구 자세를 가져야 하나.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내가 좋아서 한다는 생각을 갖기보다는 인류의 생명 연장이나 편리한 삶의 창조와 같은 가치를 깔고 있어야 한다.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벨 연구소`도 연구를 하게 된 동기가 통신산업과 관련 있는 것이다.

반도체가 개발된 것은 전화신호가 미국 대륙 전체를 통과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진공관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치자 진공관을 개선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하다 보니 트랜지스터가 나왔다. 기초과학 하는 사람들도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인류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문제다.

▶근본 원인은 사회의 보상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관예우로 한 달에 1억원씩 받는 것은 사회의 보상체계가 왜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돈이나 안정된 생활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것을 보고 법대를 가려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가 그 수준은 아닌 것 같다. 한쪽이 왜곡되면 곧 균형을 찾을 것이다. 예전에 인기가 높았던 한의대가 요즘 인기가 떨어지듯이 지금 인기 있는 직업이 20~30년 뒤에도 인기가 계속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밥을 굶을 일도 있었지만, 요즘은 좋아하고 능력이 있으면 괜찮다. 이공계가 이런 점에서 좋은 직업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정부에서 자금도 지원하고, 논문이 잘 나오면 보상도 해준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분위기여서 앞으로 이공계에 대한 선호도가 나아질 것이다.

-과학자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나.

▶과학을 해서 사회와 인문에 기여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일이다. 과학자는 굳어진, 확립된 지식이나 진리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것, 항상 의심하고 항상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기대가 크다.

▶남이 안 하는 것을 새로 시작하는 모험적인 연구를 해야 노벨상이 가능하다. 10년 안에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노벨상은 보통 연구 성과를 낸 뒤 30년 후에야 받는데, 그런 사례 말고도 예측하지 못한 우연한 발견에서 나온 노벨상도 많다. 고온초전도체는 우연히 발견된 것이고, 이는 3년 뒤에 바로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과학 등 모든 사회 분야가 지금 `패러다임 시프트` 과정에 있다. 과거는 모방경제였다. 선진국이 잘하는 것을 따라서 하는 사회였다면 이제는 남이 안 하는 것을 해야 한다. 패스트 폴로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환해야 한다.

-고쳐야 할 정책이나 제도가 적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제도는 `패스트 폴로`에 맞춰져 있다. 정부 R&D의 95~97%가 성공한다고 하는데, 이는 남이 한 것을 쫓아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면 성공 여부가 불안하고, 실패해서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격려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위해 조언한다면.

▶도전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 부족하다. 실리콘밸리에 가면 졸업생들이 창업하는 것을 엄청난 긍지로 생각하지만, 서울대 학생들은 창업보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더 선호한다. 기업가정신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현재 교육은 아직도 `패스트 폴로`식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선진국 지식을 갖고 와서 이를 가르치고 주입시키는 모델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창의성을 길러주는 일이다.



60년대 연구원 월급 대통령보다 많아
박 前대통령처럼 과학기술 우대하는 사람 없어

= "1960년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만들 당시에는 연구원 월급이 대통령보다 더 많이 받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예산업무 담당 공무원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논란이 일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KIST 직원의 봉급표를 보면서 `과연 나보다도 봉급이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군` 하고 웃더니 `그대로 시행하라`고 지시해 논란을 잠재웠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 건축과 관련해 일각에서 면적과 용지 규모가 과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창조적 연구를 위해 기존 정부출연연구소 기준보다 좀 더 넓은 규모로 건축하겠다는 것인데 제동이 걸렸다. 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건축 면적과 용지 규모가 기존 연구소와 비교해 과다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에 대한 비전을 가진 고 박 대통령처럼 `예전의 잣대로 하지 말라. 그대로 진행하라`며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다."

오세정 원장은 국책 사업으로 추진 중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사업이 초기 청사진과 많이 달라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과학벨트의 핵심 사업은 대전 신동ㆍ둔곡지구 370만㎡(약 110만평)에 기초과학연구원을 짓고 중이온가속기를 건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시설 규모를 30% 줄이도록 했고, 올해 예산에는 과학벨트 조성을 위한 토지매입비가 반영되지 않는 등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오 원장은 "가속기의 경우 상세설계를 하려면 땅의 지반을 알아야 건축물을 어떻게 짓고 지반을 몇 m 파야 할지 결정되는데, 땅을 못 사게 되면서 이런 작업이 지연되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기초과학은 시기를 놓치면 효용이 떨어진다는 점을 인식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연간 약 100억원씩 지급되는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장 선정 작업을 서둘러 진행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연구단장은 현재 16명이 선정됐으며 올해 25명 수준으로 늘릴 예정이다.
이는 전체 목표 50명 중 절반이다.

원래 지난해 25명을 선정해야 했지만 일정을 미룬 것이다. 그는 "매년 5명 정도씩, 자질이 있는 사람을 뽑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 He is…

△1953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학원 이학박사 △미국 제록스 팰러앨토 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교수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 △한국연구재단 이사장(2011년) △기초과학연구원장(2011년 11월~현재) △제6회 한국과학상 수상(1998년) △제2기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상 수상(2003년)

[박기효 기자 / 이승훈 기자 / 사진 = 이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