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리더습관] 좋은 리더보다 강한 리더가 돼라
나쁜 여자가 요즘 가요계에서 대세인 모양이다.
한동안 불었던 `나쁜 남자` 바람이 여자에게도 옮겨붙었나 보다.
이효리의 배드 걸(Bad girls)이 음원차트를 석권하고 투애니원의 씨엘이 부른 `나쁜 기집애`가 인기순위에 올라 있다.
씨엘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쁜이란 멋있다는 뜻"이라고 나름대로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나쁜`의 신(新)해석 바람은 리더십에도 불고 있다.
한동안 서번트 리더십 유행이 지나가고 `역시` 하며 `독한 리더`등 강한 리더십에 대한 요구가 일각에서 일고 있다.
요즘 기업 강의를 할 때 의외로 `독한 리더, 강한 리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받들어주고 공감해주니 분위기는 좋아지는데 성과랑 연결되지는 않더라.
공감과 소통, 말은 좋지만 성과와 연결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 조직은 놀이터나 친목계가 아니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다.
한동안 일었던 카리스마적 리더십 강풍에 대한 반작용이 서번트 리더십이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다시 부는 바람이 `성과로 연결되는 강한 리더십`이다. `역시 해보니 안 먹히더라. 교과서와 현실은 다르다.
장기성과냐, 단기성과냐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어느 세월에 좋은 리더십의 씨앗을 수확하냐`는 푸념도 들린다.
이를 위해선 리더십에서 `나쁜`과 `좋은`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흔히 `좋은`을 `구성원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오냐오냐 공감해주는 순둥이상사`로, `나쁜`을 말도 안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밀어붙이는 독단적 리더의 이분법적 논리로 구분하는 것이다.
높은 성과 리더들의 공통점은 이 같은 이분법적 논리를 뛰어넘은 강한 리더십에 있다.
진짜 좋은 리더십은 구성원의 성장을 위해선 매섭게 몰아치기도 하고, 품어주기도 하는 것이지, 늘 오냐오냐 받아 주는 것은 아니다.
늘 따뜻한 인간관계만을 중시하는 호감파 리더가 반드시 좋은 리더가 되는 것도 아니고, 모진 리더가 반드시 나쁜 리더가 되는 것도 아니다.
바버라 켈러먼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리더십 학자들은 이제 리더십이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줄 책임이 있다.
좋은 리더가 반드시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모 호텔의 B사장은 "주방까지 찾아가 밥의 정도를 체크하고 단골고객들의 입맛을 기억해 서빙할 것을 요구하는 불호령 호통"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덕분에 그 호텔의 식당은 손님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반면에 A사장은 사내 등산대회를 가는 사안조차에도 일일이 직원들의 자리를 찾아가 "이번에 가실 건가요?"하고 참석 여부를 몸소 물었다. 과연 A사장은 나쁜 리더이고, B사장은 좋은 리더인가?
역사에서 사례를 하나 더 찾아보자.
초나라의 영웅 항우를 힘만 넘치는 장수인 걸로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는 길을 가다 불쌍한 걸인을 보면 자신의 밥을 나누어주고, 비단옷을 벗어 덮어주었다.
`따뜻하기가 봄볕 같았다`는 평을 받는 인자함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방`과의 인재경쟁에서 패배했다.
한나라 토족 출신의 유방은 학력 콤플렉스가 심했고 심지어는 선비들의 갓에 소변을 볼 정도였다.
인품으로 비교하면 항우가 유방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런데도 유방에게 인재가 몰린 것은 왜였을까.
잔 정을 베푸는 살가움에서 앞섰을 망정, 제대로 신상필벌을 행하는 엄정한 리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항우는 부하들에게 봉토를 나누어줄 때는 하도 망설여서 도장의 모가 닳았다.
반면에 유방은 자신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이 미워하는 장수 옹치를 제후에 봉하는 `통큰 리더십`을 보였다.
요즘 소통과 공감이 강조되지만, 인기와 호감에 연연하는 것과 구분되어야 한다.
이를 예전 동양에서는 인약(仁弱)과 인강(仁强)으로 구분했다.
인약은 원칙없는 자질구레한 인정에 연연하느라 정작 큰 대의명분을 놓친다.
인강은 공정한 원칙을 세우느라 자질구레한 인정은 놓치지만 조직의 규율을 세운다.
리더십에서 호감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에 공헌할 수 있는 역량을 육성해주는 것이다.
나쁜 리더, 좋은 리더의 경계를 넘어 강한 리더가 되라.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