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21세기 人文學 리포트] `디테일 美學` 은 女心으로부터

길벗 道伴 2013. 6. 16. 23:51

 

 

피카소는 "인물화(portrait)는 주관적 기록"이라고 했다.

  대상의 묘사가 아니라, 작가의 눈과 마음으로 느낀 가변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초상화ㆍ인물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서서히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는데, 통치자나 종교적 지도자들을 그리던 관습은 점차 폭을

넓혀갔고, 사진이 발명된 19세기부터는 가히 폭발적으로 확대된다.

명함판 사진이 유행하면서 사회적으로 알려진 명사의 사진은 하루에 몇천 장씩 팔려나가는 일종의 품귀현상도 빚었다.

인물의 이미지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는 사진의 대중화와 맞물렸고, 좋아하는 사람,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은 복잡한 감정의 문제와 함께 부흥했다.

이렇게 사진이 인물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대체하면서 회화에서 인물화는 그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운 듯 보였지만, 1970년대 이후 다시 인물화의 변화가 눈에 띈다.

특이하게도 이런 인물화의 새 흐름을 선도했던 주류는 여성 화가들이었다.

최근 한국에서 처음 소개된 앨리스 닐은 일생동안 꾸준히 인물화를 그렸는데, 초기에는 모더니즘적 전통인 표현주의의 강렬하고 어두운 화면에 꽉 찬 구성의 인물화를 구사했다.

점차 여성과 아이, 주변의 지인들로 대상을 집중하면서 그녀의 화면은 밝고도 특별해졌다.

특히 3명의 자녀를 출산했던 작가는 임신한 여성의 배나 흉터가 남은 신체, 어린 아이의 천진한 모습 등 남성 작가들과 구분되는 섬세함을 보여주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앨리스 닐 `임신부` <1971, 캔바스에 유채>

 

만삭의 배에 나타난 스트레치마크, 가슴과 몸매의 변화 등을 비롯해 경험과 관찰력에서 나온 신체적 특징들이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인물들의 옷이나 신, 양말, 그리고 주인공이 앉은 의자나 벽의 패턴도 그림에서 빠질 수 없는 디테일의 즐거움을 주는데, 이런 점이 그림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에 밀려 회화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극사실주의나 팝아트적 회화가 그나마 회화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앨리스 닐의 개성 있는 표현은 작가가 사망 하고 한참 후, 2000년이 지나서 대규모 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여성 작가들의 섬세함은 90년대 후반 이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엘리자베스 페이튼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미술을 공부할 때인 80년대에도 여전히 개념 위주의 설치 및 다매체가 미술을 선도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않고, 작가는 인물들을 작은 화면에 섬세하게 그렸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사람들-가수, 배우, 미술가들, 친구-의 모습을 사진에 기초해 그렸다.

 페이튼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그리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림 속에서 작가의 애정ㆍ열광을 표현함으로써, 인물에 숨어 있는 인간의 감흥, 감성을 포착하고 드러내준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 여성 작가의 모성애적 바탕이 인물화의 부흥과 직결된다.

또 자칫 흘려버리기 쉬한 디테일,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숨어 있는 그 디테일을 발견하는 눈도 여성 작가들에게는 일상적이다.

 디테일의 미학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닐지, 여성 작가들의 인물화에서 지혜를 발견해본다.

[진휘연 성신여대 서양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