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3.0] 창조 ICT 첫 단추는 `찾아서 섞기`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전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삼성전자를 `카피캣(흉내쟁이)`이라고 비판했던 잡스는 원래 베끼기와 흉내 내기에 능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심지어 애플이라는 회사명까지 모방 논란에 휩싸이곤 했으니 말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와서 `새로운 것` 내지 `새롭게 보이는 것`으로 재창조하는 데 뛰어났던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발명`이라고 회자되는 것 중에는 그 당시에 없던 것이 생겨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기도 한다. 적어도 동시대에 서너 명 이상이 비슷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다투었고, 그것을 상용화하는 데 마케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발명가`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다.
스마트 혁명을 촉발한 아이폰도 제품 자체는 기존 터치스크린 방식 휴대폰을 모방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애플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음원 서비스인 아이튠스 스토어를 업그레이드하여 앱스토어로 결합함으로써 모방을 넘어서는 혁신을 만들어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술에 자신들 사업모델과 소프트웨어 능력을 활용해 `창조적 모방`을 이루어낸 것이다. 비단 애플만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많은 기업은 모방을 바탕으로 창조와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듯 모방과 창조의 경계는 작은 차이에 불과할지 모른다. 물론 그 경계를 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애플 사례를 보면, 그 경계는 모방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자기 강점이나 능력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있는 것 같다.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란 책을 쓴 윌리엄 더건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창조란 찾고 조합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이미 음악이나 TV 드라마 등 그 분야 종주국 본토에서 한류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창조적 모방에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요즈음 화두인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 창조경제를 벤치마킹해왔다. 여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강점을 잘 녹여내는 일이 남았다.
우리나라는 많지는 않지만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글로벌 기업들과 또 세계 최고 ICT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추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보다 앞서 4세대(4G) 이동통신인 LTE망을 전국에 구축해 창조경제를 구현할 수 있는 충분한 통신 기반을 마련해 놓았다.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노동력과 혁신을 지향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도 ICT 경쟁력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ICT 분야 강점은 다양한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ICT와 의료서비스가 융합되면 스마트폰으로 건강검진을 하거나, 원격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등 일상적인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이미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혈압ㆍ혈당계, 운동량 측정기 등 주변기기들이 상품화될 정도다.
최근 미국에서는 ICT가 제조업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굴뚝 없는 실리콘밸리에 공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글, 애플 그리고 전기자동차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테슬라와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ICT 생태계에 선순환이 어떤 모습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러한 과정 속에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 등장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다.
물론 칸막이식 규제를 개선하고, 벤처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하는 등 ICT와 과학기술, 그리고 사회ㆍ문화를 융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20년에는 LTE보다 속도가 1000배 빠른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이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는 ICT를 통해 새로운 서비스와 시장을 창출하며 세계의 창조경제를 선도하고 있을 우리나라를 기대해 본다.
[설정선 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