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북한과 대화 잘하기

길벗 道伴 2013. 8. 10. 14:06

북한과 대화 잘하기

 

한반도 평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개성공단이 중대국면을 맞았다.

폐쇄 이후 지지부진했던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재개돼 오는 14일 다시 개최될 예정이다.

 하지만 제대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개성공단 협상을 지켜보며 문득 10여 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부산에 본부를 둔 국제의료봉사단체인 그린닥터스재단은 2004년 통일부로부터 대북사업자로 지정돼 2005년 1월 개성공단에 응급진료소를 설치해 운영했다.

사업 초기엔 남측이나 북측 관계자 모두 오랜 단절로 인해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사안마다 부딪쳤다.

 북측은 비협조적이었다.

 당시 북측에서는 "응급진료소를 운영하는 사회단체가 `그린닥터스`란 이름의 영어를 사용한다

, 잘사는 부르주아 의사들이다,

기독교 신자들이다"라는 구실을 붙여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개성공단 응급진료소 문을 연 지 1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그동안 남과 북이 서로 각각 따로 진료소를 운영해오던 것을 한 건물에서 통합해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처음에는 120평의 건물을 반으로 나눠서 남측과 북측 진료소로 구분해 설치하고 바깥 출입문도 각각 따로 두기로 했다.

그러다가 남북 양측 진료소를 구분짓는 건물 내부 통로 문의 개방을 놓고 "열어야 한다, 안 된다"고 옥신각신하면서 남북 간 당국자들이 석 달 동안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진료소 운영주체인 그린닥터스 관계자들이 직접 북측과 협의했다

. 북측 대표는 우리와는 달리 의료인이 아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내각 책임참사였다.

 그에게 북측의 요구사항을 솔직하게 물었다.

그는 "북측 진료소엔 여성 근로자들이 많이 이용하니 산부인과를 설치해 달라.

대신에 내부통로는 절대로 열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의료인인 그린닥터스 대표는 "산부인과 설치를 받아들일 테니 X선 촬영과 판독 등 응급환자 진료를 위해서 낮에는 내부 중앙통로 문을 개방해 서로의 진료공간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차분하게 설득했다.

석 달 동안 질질 끌던 문제가 회담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해결된 것이다.

그때 느낀 게 있다

. 대화는 반드시 진정성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북측 인사들은 걸핏하면 대화 중에 "우리를 거지 취급 말라"며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존심 하나 달랑 남아 있다는 투여서 씁쓸하게 느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남측 인사들을 만나면 괜스레 위축되는 그들의 마음만 우리가 잘 헤아려 주어도 의외로 회담은 실타래가 풀리며 잘 진행될 수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의 원인을 우리 정부의 지나친 `원칙 고수`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무슨 일이든 원칙은 중요하다.

특히 서로 신뢰하기 힘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더더욱 확고한 원칙이 전제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원칙이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둬야 하는지는 여러 가지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어떤 이는 한반도 평화에, 어떤 이는 경제적인 실리에, 어떤 단체는 이데올로기의 상대적 우위에 대화의 원칙을 둬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대화 제의에도 묵묵부답이던 북측이 우리 측의 초강수에 뒤늦게 다시 대화를 하겠다고 나섰다.

 인내심을 갖고 아직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번 개성공단 문제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경제와 실리다.

대신 북한엔 명분과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린닥터스를 통해 지난 8년간 북한 당 간부나 내각 관계자들과 수십 차례 대화를 해본 사람으로서 내린 결론이자 조언이다.

 "당장 개성공단을 재가동해 달라"는 우리 입주기업인들의 목소리에 진정성을 갖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태생적 목적이 이윤추구인 기업들이 왜 개성공단에 투자했을까.

 여기에 남북대화의 답이 있다

 

[정근 대한결핵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