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CEO 심리학

길벗 道伴 2013. 9. 7. 13:52

*.나 vs 우리…행복·기쁨 추구, 비극 막는 존재

지혜로운 최고경영자라면 `나`와 `우리`의 역할 구분…일의 종류따라 달리 활용을

 

1인칭 대명사란 말하는 사람, 즉 자신을 가리킬 때 쓰는 대명사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로 단수와 복수이며 `나`와 `우리`라는 말로 대표된다. 즉, 남이 아닌 자신을 나타내는 개념이 두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소해 보이는 이 두 개념이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나`라는 개념이 우세하거나 활발해지면 `무언가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무게가 더해지고, `우리`라는 개념이 더 활발하거나 중요하게 거론되면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피하거나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 5분 동안만 나 혹은 우리를 반복적으로 되뇌기만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강한 행복 추구 혹은 회피 본능을 느끼는 시기에 언론이나 사람들의 대화 등을 분석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최고경영자(CEO)라면 구성원들을 각각의 `나`로 구분해 주거나 하나의 `우리`로 묶을 때가 각기 다름을 알아야 한다.

`나`는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는 데 적합한 자아 개념이기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일을 시작할 때 적합하다. 따라서 자아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지원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에 `우리`라는 개념은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이나 긴박하게 무엇을 예방하는 것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구성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협동을 강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라는 말을 특히나 사랑하고 자주 쓰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이다. 실제로 `나`라는 표현이 들어갈 자리에 `우리`가, 심지어는 비문법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사례가 허다하다. 우리 남편, 우리 아내,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이 우리 집이라고 말하는 것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영어권 사람들이 자기의 학교나 모국을 `my school` `my country` 등으로 표현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대상에 대해 소유권을 명확하게 지닌 경우조차도 `나`를 잘 쓰려 하지 않는다. 무례하거나 거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두드러지게 하기보다는 나를 우리에 포함시켜 희석시키는 겸손을 보인다.

한국의 조직 문화는 `나`보다는 `우리`를 유난히 강조한다. 개인기보다는 팀워크를, 개성보다는 협동을 강조한다. 분명 겸손, 협동 등은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 중요한 요인들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몰개성은 물론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는 분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분위기가 고착되어 있는데 CEO가 지향하는 바는 창조와 혁신이니 무언가 불일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나 기업, 나라가 무언가를 예방하거나 긴급한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지 못하면 구성원들이 공분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관점이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일은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성취되지 않은 경우에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지 않다.



이러한 차이는 `나`보다는 `우리`가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개인적 능력이나 취향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 간과되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우리는 비극을 막는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일의 종류가 달라짐에 따라 자아의 크기도 달라져야 한다.

 

 

*.신뢰의 두가지 얼굴 `안정성 vs 충성심` 

                 

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신뢰(信賴)라는 말의 뜻은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여기에는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안정성`과 `충성심`의 구분이다.

우리는 잘 변하지 않는 사람과 충성심이 강한 사람에게 모두 `신뢰`라는 같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비록 두 가지가 결과적으론 같은 `신뢰`라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기 때문에 혼동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통계에서 여러 번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클 경우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영어로 `reliability`라고 하며, 이 신뢰도가 높을 경우 `믿을 만한 자료`라고 이야기한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서나 감정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하지만 믿을 수 있다는 말을 쓰는 경우가 또 하나 있다. 영어로 `trustable`이라는 말로 풀어볼 수 있는데, 이는 정서적인 개념이다. `왠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나를 지지해줄 것 같은` 등의 생각에 속하는 믿음이다. 이건 안정성보다는 충성도에 가까운 개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둘을 자주 혼동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하는 말에 있어서도 우리는 전혀 다른 이 두 종류의 차원을 신뢰라는 한 가지의 믿음으로 느끼고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CEO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CEO들이 `믿을 만한 사람을` 중용하기 위해 애타게 찾고 있다. 그런데 안정성에 기반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과 충성에 기반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을 혼동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좋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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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기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변화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즉, 혁신적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들이 조직 내에서 사고의 전환을 수월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믿을 만한 사람`은 변화를 만들어내기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충성심에 기반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은 어떤가. 오히려 너무 많은 변화조차도 고민 없이 만들어낼 위험을 안고 있다. 적절하지 않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과의 관계가 일이나 사명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 CEO의 신망을 받는 사람들이 무언가 극단적인 선택을 너무 쉽게 내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명한 CEO는 나와 내 신뢰를 받는 사람들 사이에 그 신뢰로 인해 놓치는 것들을 알려줄 만한 사람을 하나 더 둬야 한다. 그 좋은 예가 부통령, 부사장 등 이른바 `부(副)` 자가 붙은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약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부`로 시작하는 위치의 사람들에 있다.
 
효율성과 상명하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이들이 가지는 역할을 너무 약하게 설정해 놓았거나 심지어는 아예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해야 할 역할은 CEO의 복제품이 아니라 CEO가 느끼는 `신뢰`라는 감정을 제어하거나 조언해주는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이다. 지혜로운 CEO라면 자신을 가장 잘 긴장시키는 사람을 `부`의 자리에 앉힐 수 있어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