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심리학
*.나 vs 우리…행복·기쁨 추구, 비극 막는 존재
지혜로운 최고경영자라면 `나`와 `우리`의 역할 구분…일의 종류따라 달리 활용을
1인칭 대명사란 말하는 사람, 즉 자신을 가리킬 때 쓰는 대명사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로 단수와 복수이며 `나`와 `우리`라는 말로 대표된다. 즉, 남이 아닌 자신을 나타내는 개념이 두 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소해 보이는 이 두 개념이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나`라는 개념이 우세하거나 활발해지면 `무언가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무게가 더해지고, `우리`라는 개념이 더 활발하거나 중요하게 거론되면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피하거나 예방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단 5분 동안만 나 혹은 우리를 반복적으로 되뇌기만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강한 행복 추구 혹은 회피 본능을 느끼는 시기에 언론이나 사람들의 대화 등을 분석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최고경영자(CEO)라면 구성원들을 각각의 `나`로 구분해 주거나 하나의 `우리`로 묶을 때가 각기 다름을 알아야 한다.
`나`는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는 데 적합한 자아 개념이기 때문에 기발한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일을 시작할 때 적합하다. 따라서 자아가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지원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에 `우리`라는 개념은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이나 긴박하게 무엇을 예방하는 것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구성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협동을 강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라는 말을 특히나 사랑하고 자주 쓰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이다. 실제로 `나`라는 표현이 들어갈 자리에 `우리`가, 심지어는 비문법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사례가 허다하다. 우리 남편, 우리 아내,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이 우리 집이라고 말하는 것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영어권 사람들이 자기의 학교나 모국을 `my school` `my country` 등으로 표현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대상에 대해 소유권을 명확하게 지닌 경우조차도 `나`를 잘 쓰려 하지 않는다. 무례하거나 거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두드러지게 하기보다는 나를 우리에 포함시켜 희석시키는 겸손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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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나 기업, 나라가 무언가를 예방하거나 긴급한 일을 효율적으로 잘하지 못하면 구성원들이 공분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의 관점이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일은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성취되지 않은 경우에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지 않다.
이러한 차이는 `나`보다는 `우리`가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개인적 능력이나 취향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연결시키는 과정이 간과되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고 우리는 비극을 막는 존재`임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일의 종류가 달라짐에 따라 자아의 크기도 달라져야 한다.
*.신뢰의 두가지 얼굴 `안정성 vs 충성심`
우리는 잘 변하지 않는 사람과 충성심이 강한 사람에게 모두 `신뢰`라는 같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비록 두 가지가 결과적으론 같은 `신뢰`라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하더라도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기 때문에 혼동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통계에서 여러 번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클 경우 `신뢰도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영어로 `reliability`라고 하며, 이 신뢰도가 높을 경우 `믿을 만한 자료`라고 이야기한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서나 감정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하지만 믿을 수 있다는 말을 쓰는 경우가 또 하나 있다. 영어로 `trustable`이라는 말로 풀어볼 수 있는데, 이는 정서적인 개념이다. `왠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일을 해도 나를 지지해줄 것 같은` 등의 생각에 속하는 믿음이다. 이건 안정성보다는 충성도에 가까운 개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둘을 자주 혼동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용하는 말에 있어서도 우리는 전혀 다른 이 두 종류의 차원을 신뢰라는 한 가지의 믿음으로 느끼고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CEO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CEO들이 `믿을 만한 사람을` 중용하기 위해 애타게 찾고 있다. 그런데 안정성에 기반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과 충성에 기반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을 혼동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좋지 못할 것이다.

충성심에 기반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은 어떤가. 오히려 너무 많은 변화조차도 고민 없이 만들어낼 위험을 안고 있다. 적절하지 않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과의 관계가 일이나 사명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 CEO의 신망을 받는 사람들이 무언가 극단적인 선택을 너무 쉽게 내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명한 CEO는 나와 내 신뢰를 받는 사람들 사이에 그 신뢰로 인해 놓치는 것들을 알려줄 만한 사람을 하나 더 둬야 한다. 그 좋은 예가 부통령, 부사장 등 이른바 `부(副)` 자가 붙은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약점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부`로 시작하는 위치의 사람들에 있다.
이들이 해야 할 역할은 CEO의 복제품이 아니라 CEO가 느끼는 `신뢰`라는 감정을 제어하거나 조언해주는 안전장치로서의 역할이다. 지혜로운 CEO라면 자신을 가장 잘 긴장시키는 사람을 `부`의 자리에 앉힐 수 있어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