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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의 게임愛]실패의 기회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길벗 道伴
2013. 9. 23. 17:05
[김성진의 게임愛]실패의 기회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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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9.22 08:30:03 | 최종수정 2013.09.22 11:4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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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 버드`의 성공은 모바일 게임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고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가능성을 증명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로비오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이 무수한 실패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여기서 ‘앵그리 버드`를 출시하기 앞서 공개된 게임만 35개 이상이다. 30번 이상의 실패를 했던 셈이다. 2003년에 리투드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회사는 2009년 ‘앵그리 버드’를 출시하기 전까지 6년 동안 유럽의 그저 그런 작은 회사에 불과했다.
핀란드의 다른 회사 슈퍼셀은 ‘크래쉬 오브 클랜`과 ‘헤이데이`로 커다란 성공을 거뒀는데 이들 역시 시작은 PC온라인 게임이고 실패한 프로젝트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실패를 굳이 널리 알릴 필요는 없지만 처음부터 성공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란 소리다.
한국 유저들에게 친숙한 블리자드라고 다르지 않다. 1991년 실리콘 앤 스냅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블리자드는 1994년 ‘워크래프트’를 출시하기 전까지 5개의 게임이 있었고 그 가운데 2개는 레이싱 장르였다.
실패의 기준이 모호하나, 블리자드의 오늘 날 위상에서 보면 확실히 ‘워크래프트` 이전의 작품들은 실패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람들은 블리자드의 화려한 성공만 기억하고 있지만 실패의 어두운 그림자도 분명 존재한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1995년 ‘워크래프트 2’를 내놓았고 1996년에 ‘디아블로’, 1998년 ‘스타크래프트’, 2004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이어지는 연타석 대형 홈런을 날리며 오늘 날의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탄생했다.
재미있게도 ‘디아블로`는 원래 턴제 RPG였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시험삼아 실시간 전투를 구현했고 이것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 당시 RPG는 실시간이 아닌, 서로 번갈아 가며 공격과 방어를 하는 턴제가 주류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게임 회사들은 대부분 실패를 경험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로비오 엔터테인먼트 경우는 무려 30번이 넘는다.
우리 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든 케이스이다. 기회는 한두 번에 불과하고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못하면 회사의 문을 내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만나 본 많은 개발자들이 원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꾸준한 개발이다. 현재 개발 중인 프로젝트가 망가지면 다른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환경이 우리 게임계의 현 주소이다. 어느 한 개발사의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별로인 개발자란 없다. 그것을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요한 것은 팀 워크와 리더쉽이다. 성공의 시작은 여기에서 나온다.”
자칭 업계 관계자들은 성공을 가늠하기 위해 개발자들의 이력을 따진다. 성공한 프로젝트에서 근무한 경력만 높게 인정한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실패의 기회를 주지 않는 한국 게임 산업의 특성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나라에서 로비오 엔터테인먼트 같은 회사가 탄생하기란 매우 힘들 것이다. 단점 보다 장점을 더 많이 보고 너그러운 마음을 길러야 한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유독 개발자와 개발사에게 가혹하고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임평론가 김성진 harang5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