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뿌리산업이 미래다

길벗 道伴 2013. 9. 29. 21:53

 

 

◆ 뿌리산업이 미래다 (上) ◆

*. 뿌리산업 `홀대`…한국미래 `빨간불`

갤럭시S4에 첨단 카메라렌즈 없다면…
2만5천여개 금형·주조기업 지원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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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S4`에 있는 1300만화소 카메라모듈. 그 카메라 렌즈를 자세히 보면 몇 겹으로 돼 있다. 정중앙에 있는 렌즈 크기는 직경 1.4㎜다. 이 렌즈를 대량생산하려면 금형(금속 거푸집)부터 설계ㆍ제조해야 한다. 눈곱만 한 렌즈가 균일한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지도록 금속을 정밀하게 깎아내야 한다. 이 어려운 기술을 개발한 곳은 경기도 평택의 나노몰텍이라는 금형 업체다.

`불량률 제로(0)`인 나노몰텍의 금형장치는 상판과 하판의 오차가 0.002㎜(2마이크론)에 불과하다. 머리카락 두께의 35분의 1이다. 이 회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정밀 금형기술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갤럭시 S4 카메라는 지금의 화질ㆍ무게ㆍ크기를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차 포르쉐 카이엔에도 한국 중소기업의 뿌리기술이 담겨 있다. 국내에서 1억원을 웃도는 이 차는 계기판이 독특하다. 속도계ㆍ유량계 등 5개 원형이 계기판을 멋지게 채우고 있다.

이 계기판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도 열처리ㆍ가공ㆍ냉각 등 수백 가지 기술을 총집결한 건우정공(경기도 안산)의 금형기술 덕분이다.

이렇듯 뿌리산업은 휴대폰과 자동차는 물론 조선ㆍ철강 등 주력 산업의 기초를 탄탄히 해줄 뿐 아니라 제조업이 첨단산업으로 발전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한참 뒤진 지난해 말에야 뿌리산업 지원 방안을 만들었고, 1개의 지원센터를 가동하고 있을 뿐이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뿌리산업을 `3D(더럽고ㆍ어렵고ㆍ위험한) 업종의 대명사`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 <용어 설명>

뿌리산업 : 제품 형상을 만드는 금형ㆍ주조ㆍ용접ㆍ소성가공ㆍ표면처리ㆍ열처리 등 6가지 기초공정산업. 다른 산업의 제조과정에서 공정기술로 활용되는 특성 때문에 자동차ㆍ조선ㆍIT 등 수요산업 시장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  아프간 美軍트럭 기어박스도 국내 뿌리기술로 만들어

車·항공기 핵심부품 90%가 뿌리산업
국내 시장규모 87조원…대부분 中企
미래산업 선점위한 정책 지원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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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자동차용 주조부품 제조기업 삼기오토모티브는 여느 주조기업들과 차별되는 기술력을 자랑한다. 핵심은 2년간 연구해 개발한 고압주조법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변속기ㆍ엔진 등 자동차 핵심 장치에 들어가는 알루미늄 부품을 단단하고 정밀하게 고속가공하는 기술이다. 국내에선 단 두 곳만이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삼기오토모티브는 지난 3월 이 기술로 개발한 `밸브바디 아세이`란 부품을 독일 폭스바겐에 납품하는 쾌거를 거뒀다.

밸브바디 아세이를 장착한 폭스바겐 신형 변속기(DCTㆍDouble Clutch Transmission)는 유압식 변속기에 비해 반응 속도가 25% 이상 빠르고, 연비가 10% 이상 향상된다.

뿌리산업이 연구개발(R&D), IT 융ㆍ복합 등 첨단화 노력에 힘입어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꿈나무`로 탈바꿈하고 있다.

삼기오토모티브는 시작에 불과하다. 제일정공은 삼성전자가 LCD TV로 세계를 제패하게 만든 숨은 공신이다. 제일정공은 `이중사출`이라는 독특한 기술로 삼성전자의 간판 TV `크리스탈 로즈`에 쓰이는 외장프레임용 금형을 개발했다.

이중사출이란 2개 이상의 이종(異種)ㆍ이색(異色) 수지를 연속적으로 사출성형하는 기술로, 복잡한 곡선 무늬와 색상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제일정공 금형을 활용해 만든 `크리스탈 로즈`는 2008년 북미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진흥주물은 뿌리 기술 하나로 미국 군수시장을 뚫었다. 군용 트럭이 노면 요철 위를 지나거나 회전할 때 흔들리거나 뒤집어지지 않도록 각 바퀴의 회전수를 조절해주는 장치가 `차동기어장치`.

이 장치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어박스`를 만드는 게 바로 진흥주물의 주조기술이다. 2000년대 초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지뢰 폭발 상황에서도 끄떡없어 성능을 입증받았다.

뿌리기업들이 이 같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까지는 물론 사활을 거는 도전정신이 있었다. 삼기오토모티브는 폭스바겐 납품을 위해 설비를 첨단화했고, 원재료를 직접 가공하는 자회사도 세웠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지출한 금액과 계획된 금액을 더한 투자금은 총 1000억원. 1년 매출에 맞먹는다.

산업통상자원부(2012년)에 따르면 국내 뿌리산업 시장규모는 약 87조4000억원. 뿌리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은 약 2만4997개로 이 중 99.93%인 2만4980개가 중소기업이며 나머지 17개는 중견기업이다.

뿌리기업 중 대기업 범주에 든 기업은 아직 없다. 뿌리기업에 근무하는 종사자는 약 26만명으로 기업당 평균 10.4명 수준이다.

뿌리산업은 주요 제조업을 구성하는 뼈대다. 자동차 1대를 생산할 때 6개 뿌리산업을 통해 생산된 부품 2만2500개가 들어간다. 전체 부품의 90%에 해당한다.

무게를 놓고 보면 뿌리산업을 통해 생산된 부품의 총무게는 1.36t으로 평균 차 무게의 86%다. 선박을 건조할 때에는 제조원가의 30%가 용접과 주조 등 뿌리산업 관련 비용이다.

뿌리산업의 가능성은 현재보다 미래에 더 높다. 미래형 자동차, 우주ㆍ항공, 해양자원 개발, 신재생에너지 등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미래 기술들의 성패도 결국은 뿌리산업의 성장 여부에 달려 있다.

전기자동차만 해도 낮은 연비를 가능하게 할 핵심 기술인 차량 경량화는 주물과 소성가공 기술의 첨단화를 통해 가능하다. 심해저나 극지대의 지하자원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소재가 필요한데, 이 역시도 뿌리산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정부는 주력산업인 완성품 제조업 경쟁력을 활용해 뿌리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세계 14위였던 기술력 순위를 2017년에는 6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김성덕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생산기반 PD(프로젝트 디렉터)는 "발상을 바꿔 긍정적으로 접근하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 뿌리산업"이라며 "보다 많은 뿌리기업을 중추적 위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국내최대 경인주물공단 `환경유해` 낙인에 이전 7년째 표류

공장증설·원자재 반입 금지로 발묶여
"힘들고 저임금" 현대차 협력사도 인력난
정부·지자체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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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인천 경서동 경인주물공단. 80만㎡의 용지에 들어선 20여 개의 중소기업이 주물을 생산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이 생산하는 연간 15만t에 달하는 주물은 국내 전체 생산량의 20%에 달한다. 하지만 근로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기약 없는 공장 이전 문제 때문이다.

원래 경인주물공단은 1983년 정부의 협동화사업 명목으로 추진됐다.

서울 영등포와 뚝섬 인근에 흩어져 있던 주물공장을 한군데 모아 생산성도 높이고, 도시 미관도 개선하기 위해 옮겨온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경인주물공단은 `수도권 최대 주물단지`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또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이유는 또다시 미관과 환경오염이다. 공단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불산 사고 등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지역 민원이 빗발쳤다.

이에 인천시는 2007년 업종고도화 계획에 따라 주물 관련 업종의 신규 진입을 전면 차단했다.

기존 주물기업들은 공장 증설과 매매조차 어렵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경기가 나빠지면서 주문 물량까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결국 주물공단은 2009년 충남 예산군과 이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산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역민들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주물업종의 이전 인가를 내준 것은 충청남도 잘못"이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2심 법원이 지난 5일 충남도의 손을 들어줬지만 앞길이 불투명하다.

정성모 경인주물공단조합 전무는 "당초 44개 업체에서 시작해 이제는 23곳으로 줄었다"며 "원만한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사례. 안산 뿌리산업특화단지에 있는 도금업체 SKC. 자동차 외장재, 휠캡 등을 생산하는 번듯한 현대차 협력업체다.

그런데도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회사 관계자는 "요즘 도금업체에 오려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 회사 직원 200명 중 70여 명은 외국인 근로자다. 나머지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50대다. 정부가 뿌리기업 지원에 나섰다고 해도 피부로 느끼는 건 없다.

한국 제조업 고도화의 주역이었던 뿌리산업이 갈 곳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뿌리산업이 방폐장에나 있을 법한 `님비(NIMBY)`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환경유해 업종이라는 인식에 따른 입지 규제 때문이다. 도금 업종은 중금속 폐수를, 주물은 분진ㆍ일산화탄소 등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다는 게 규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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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세 뿌리기업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 놓여 있고, 이는 인력난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장갑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시화공단의 한 도금공장(왼쪽). 반면 인근 에코그린센터(도금집적단지)의 한 입주업체는 작업환경이 깨끗하게 개선돼 인력난이 덜하다.<박상선 기자>

김진영 산업단지공단 책임연구원은 "반도체 업종은 제조공정에서 각종 유해물질을 배출하지만 첨단업종으로 분류돼 공장 입주에 제한이 없는 반면 도금ㆍ주물업종은 무차별적으로 입주 제한을 받고 있다"며 "업종에 따른 일괄 규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월ㆍ시화ㆍ남동공단의 경우 경기도의 `환경업종 입주제한 지침`에 따라 뿌리기업의 공장 증설이 강력하게 차단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산단기본계획에 따르면 뿌리산업 입주를 막을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다만 사후 규제에 머물러야 할 환경부와 지자체들이 원자재 반입이나 공장 증설을 금지하는 우회적 방식으로 사실상 인허가를 통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와중에 뿌리산업 활성화 방안이 등장하면서 정부부처와 지자체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갈팡질팡하고 있다.

뿌리기업 중 복잡한 인허가 벽을 넘어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은 25%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시너지 효과를 낼 기회를 잃은 뿌리기업은 성장 기회를 놓친 채 영세해졌고, 부가가치도 떨어졌다.

힘들고 돈 안 되는 직종에 오겠다는 젊은이들이 줄면서 인력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뿌리기업의 인력부족률은 8.76%로 중소기업 평균(3%)의 3배에 달한다.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으면서 결국 산업 전체가 고령화됐고, 빈자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메웠다.

김수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뿌리산업은 그야말로 위기에 있다"며 "기업이 커질수록 여러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경쟁력이 높아지듯이 뿌리기업들이 대기업과 함께 성장해야 한국의 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된다"고 했다.

 

 

*. 글로벌 `뿌리 전쟁` 점화됐다                  

"디지털기술만으론 한계" 日-세금만 4조 넘게 깎아줘
獨-10개 첨단 클러스터 운영

 

세계 각국은 앞다퉈 뿌리산업 키우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뿌리산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치열한 첨단산업을 둘러싼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선 뿌리산업이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2006년, 독일과 일본은 뿌리산업 육성 단계를 넘어 고도화를 추진했고 다른 나라들도 앞다퉈 관련 법규를 만들고 있다.

뿌리산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나라는 일본이다. 한때 뿌리산업 위기를 겪은 여파다. 1980년대 이후 제조업체들이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고 IT산업 등 첨단산업이 발전하면서 뿌리산업은 힘들고ㆍ더럽고ㆍ위험하다는 `3K(KitsuiㆍKitanaiㆍKiken) 산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IT붐이 꺼지고 디지털 기술만으로는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뿌리산업 살리기에 나선 것. 일본은 2006년 `모노즈쿠리 고도화법`을 제정해 섬유가공ㆍ절삭가공 등 20개 업종을 지정해 육성하고 있다. 한국의 6개보다 훨씬 많은 셈이다. 일본은 이 고도화법을 통해 뿌리산업 설비 지원은 물론 설계ㆍ구매ㆍ생산ㆍ판매에 이르는 전방위적 지원과 함께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장인 정신을 토대로 뿌리산업의 가장 큰 취약점인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과학기술진흥기구에서 산학 공동 연구개발(R&D)을 적극 추진했고, 도쿄대학과 연계해 모노즈쿠리 경영연구센터를 세워 뿌리산업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미래 뿌리기술자를 키우기 위해 대학ㆍ고등전문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인재 육성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독일도 2006년 `중소기업을 위한 연방정부의 계획`을 발표해 뿌리산업 등 17개 산업에 대한 지원과 행정규제 축소, 숙련기술자 확보를 추진했다. 중견기업 1000개를 육성한다는 전략 아래 10개 뿌리산업 첨단 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2006~2009년 4년간 뿌리기술 투자금이 2억5000만유로(약 3600억원)에 달한다.

미국은 일본ㆍ독일보다 조금 늦게 뿌리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0년 `제조업 증강법`을 만들어 뿌리기업들이 수입하는 원자재 관세를 낮추거나 없앴고, 연방 연구소와 민간기업 간 공동 R&D로 기술 이전을 활성화하고 있다.

`제조업 기술 확장 파트너십(MEP)`을 구축해 지역 내 60개 센터를 두고 뿌리기업 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것도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은 2009년 10대 산업 진흥정책을 발표해 철강ㆍ자동차ㆍ전기전자 제조업 분야 핵심 제조기술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산화를 위해서다.

 

자동차 내장재 금형, 금형디자인 기술 분야는 중국의 역점 분야다.

이세헌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중국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중국이 아직은 숙련된 인력 등 소프트파워가 부족하지만 향후 얼마든지 한국과의 격차를 역전시킬 수 있다"며 적절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 정부 지원 늘었지만 엇박자                  

올해 예산 7900억…공정혁신은 18% 줄어

 

한국도 선진국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해부터 뿌리산업 육성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제1차 뿌리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확정한 것은 지난해 12월.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올해 1월 수립됐다. 기획재정부ㆍ교육부ㆍ안전행정부ㆍ고용노동부ㆍ중소기업청 등 범부처 지원기관이 공동으로 총 59개 과제를 마련했다.

먼저 뿌리기술 연구개발(R&D) 지원 시스템을 만들었다. 산업부의 산업융합원천기술개발사업, 중기청의 제품ㆍ공정개선기술개발사업 등 4개 사업에 총 260개의 R&D 과제가 지원된다.

또 자동차ㆍ조선ㆍ중공업ㆍ정보통신ㆍ전기전자 등 5개 협력포럼이 구성되고 `뿌리기술 전문기업` 50개사 이상 지정, 시흥ㆍ진주ㆍ김제ㆍ광주ㆍ고흥ㆍ부산ㆍ울산 등 7개 지역에 공동 파일럿 플랜트 구축 등이 추진된다.

뿌리기업 공정 혁신도 촉진된다. 총 322개 기업에 연속공정 자동화 등이 지원되며 500개 기업에 품질 혁신, 120개사에 생산공정 디지털화 전환 등이 지원된다.

정부가 이를 위해 올해 투입하기로 한 예산은 7916억원(출연 등 1274억원, 융자ㆍ보증 6642억원). 전년도(7526억원)보다 5.2% 늘어났다.

 



그러나 예산을 자세히 뜯어보면 뿌리기업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공정 혁신` 예산은 지난해 2019억원에서 올해 1640억원으로 18.8%나 줄었다.

뿌리산업계 한 전문가는 "뿌리산업은 수주와 임가공이 주를 이루고, 소재 가격 상승과 납품가 할인 요구 등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기술 개발보다 공정 개선이 단기간 내 생산성 향상에 효과적이며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공정혁신 예산만 줄인 것만 봐도 뿌리산업의 특성과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꼬집었다

 

 

*. 뿌리기업 전용 R&D예산 절실                  

정부 지원 늘린다지만 제조업에 밀려 `차별

"뿌리기업의 자생력을 높이고 해외 진출을 활성화하려면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다른 제조업보다 차별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수도권 인근에서 금형업체를 운영하는 박 모 대표(47)는 기자에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기업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최근 2년간 해외 진출에 힘을 썼다.

신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ㆍ홍보에도 힘을 기울이며 외국 업체와 접촉했다. 성사 단계에 다다랐을 때 외국 업체에서 기술력 입증을 위한 가동 설비 리스트를 보내달라는 메일을 받았다.

박 대표는 "컴퓨터 수치제어(CNC) 방전기, 고속가공기, 3차원 측정기 등 대당 10억원을 호가하는 장비들을 보유하고 있는지 물어왔다"며 "연구시설과 제휴해 장비를 사용할 수만 있어도 된다는 조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박 대표는 금형단지에 해당 설비 등을 포함하는 R&D 시설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했고, 100억원가량을 지원해 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정부는 시간만 끌 뿐 답을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

최근까지 중소기업에 R&D 자금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뿌리기업들은 대부분 가공업종이다 보니, 솔직히 일반 제조기업에 비해 차별받는 게 사실"이라며 "일반 기업과 뿌리기업에 대한 동등한 R&D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바람을 타고 정부는 올해 뿌리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7526억원)보다 5.2% 증가한 7916억원을 책정했다. 이 중 융자자금 1400억원과 수출ㆍ창업 등 보증자금 4960억원을 제외하면 순수 지원액은 1500억원 수준이다. 그나마 경영ㆍ근무환경 개선 등 R&D와 무관한 사업에 올해 예산의 65%가 넘는 5212억원이 할당됐다.

 

 

*. 대부분 3·4차 협력사 …`동반성장`서도 소외

 

"완성차 노조가 파업하면 협력사들은 두 배로 힘들다고요? 그 정도면 다행이죠. 우리는 문 닫을 위기에 몰립니다."

인천에 위치한 A 주조기업 사장은 사업을 접을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A사는 대략 200~300종류의 부품을 생산하는데 90%가량이 자동차에 쓰인다. 국내 완성차 제조업체들에 3~4차 협력사로 등록돼 있다. 한 달 내내 공장을 가동해 거두는 매출은 약 3억원. 원재료값, 공장 임대료, 전기료를 내고 급여까지 주면 사장 손에는 대기업 부장 월급 정도의 돈이 남는다.

하지만 완성차업체가 파업이라도 하면 그 피해가 도미노처럼 전달돼 월 수입의 몇 배에 달하는 적자가 쌓인다. 영세기업이지만 대기업 협력사인 탓에 다른 거래처는 사실상 없다. 이 회사 사장은 "대기업이 협력사와 상생한다고 대금을 현금결제하고 적정 납품가도 보장해준다. 하지만 (3ㆍ4차 협력사인)우리에게까지 돌아오는 건 전혀 없다"고 씁쓸해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강조되는 동반성장에서도 뿌리기업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제조업에서 흔히 `동반성장 사각지대`라고 하는 2차 이하 협력사 비중이 유독 뿌리산업에서 절대적으로 높은 탓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2만5000여 뿌리기업 중 원도급기업의 분포는 2.5%에 불과하다. 1차 협력사는 9.7%, 2차는 28.3%이고 나머지 59.5%는 3차 이하 협력사다.

뿌리기업이 동반성장의 `최후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산업의 구조적 특성이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대기업에 편중된 정부지원 등 일련의 악조건 속에서 소외된 중소기업이 대체로 뿌리기업들이다.

김종국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사무총장은 "뿌리기업들은 대기업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사업구조인 데다 공급망 사슬의 말단에 위치해 고객사의 온갖 불공정 행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동반성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질수록 뿌리기업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커진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단조기업 B사는 경우에 따라 대기업 또는 1차 협력사와 직접 거래도 하지만 주로 2~3차 협력사로 납품한다. 대기업과 직접 거래할 때는 그나마 5% 정도의 이익을 남기지만 2~3차 협력사인 고객사와 거래하면 거의 수익을 못 낸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기라도 하면 여지 없이 적자다.

 

이 회사 사장은 "대기업과 직접 거래할 인맥이나 영향력이 없는 우리 같은 회사는 앉아서 수익을 뺏길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뿌리산업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동반성장 풍토를 뿌리기업들에까지 확산시켜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간 상생노력의 결실이 2~4차 협력업체에도 전해질 수 있도록 협력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기획취재팀=민석기 팀장 / 전정홍 기자 / 정순우 기자 / 김정범 기자]

 

 

 

 

*. 창조경제 첫걸음은 뿌리기업 육성


며칠 전 경남 창원. 한 표면처리 전문기업 대표는 뿌리산업을 취재하러 온 기자를 만나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그는 "현 정부가 창조경제를 제대로 하려면 딱 하나만 제대로 하면 되는데,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할 여유조차 주지 않고 "딱 하나, 바로 자금"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경기도 안산. 한 금형 전문업체 대표는 기자에게 "현 정부가 외치는 창조경제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청년창업이나 벤처기업에 팍팍 지원해주고 있는데, 얼마나 일자리 창출이 될지 의문"이라며 "하지만 금형 같은 뿌리기업은 조금만 자금지원을 해줘도 성과가 빨리 나와 확실한 일자리 증가로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두 사장들의 표현은 정제되지 않고 다소 거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창조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뿌리산업 현장을 들러보면 `예상대로` 뿌리기업은 중소기업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기피 직종으로 전락해 근로자 대부분은 40~50대이고, 그나마 빈자리는 외국인들이 채웠다.

게다가 대기업은 툭하면 단가를 깎으려 들고, 창조금융을 외치는 은행들은 지금도 기술보다는 담보를 보고 대출해준다. 뿌리산업은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이는 우리 정부가 뿌리산업의 강점과 중요성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은 세계 경제의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제조업만큼은 유독 강하다. 일찍이 뿌리기술의 인적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의 중요성을 깨닫고 뿌리기술에 사활을 걸고 육성했기 때문이다.

뿌리가 단단하고 튼튼해야 잎이나 줄기가 올곧게 또 무성하게 자라는 법이다. 산업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창업`이라는 정부의 방향 설정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창조경제의 첫걸음은 뿌리산업도 벤처기업과 함께 제대로 지원해서 키우는 것`이란 정책이 탄력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업종별 특성에 맞춰 단지화 `뿌리 실리콘밸리` 조성하자
신정기 뿌리산업특별위원장


"돈보다, 지원보다 더 급한 게 규제입니다. 일단 규제 좀 풀어주십시오."

신정기 중소기업중앙회 뿌리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이제라도 키워보겠다고 뿌리산업을 지정했지만 결국 지원보다는 규제만 많은 실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뿌리산업특별위원회는 중기중앙회가 뿌리산업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책 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4월 발족한 `뿌리 태스크포스(TF)`다. 6대 뿌리업종 협동조합과 중소기업, 학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됐다.

도금공업협동조합 이사장도 맡고 있는 신 위원장은 "뿌리산업을 통해 기초소재 분야를 육성해야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에 진입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규제에 급급해선 뿌리산업 육성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뿌리산업은 지금 돈도, 땅도, 사람도 없는 3무(無)"라며 "뿌리산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는 것이 도약의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뿌리기업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사례로 시화호 인근에 새로 조성 중인 925만㎡ 규모 시화 멀티테크노밸리를 꼽았다. 신 위원장은 "안산단지 내 도금 기업들이 시화밸리 입주를 요청했지만 `첨단`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며 "스마트폰 사출기업은 첨단업종이고, 자동차 기초 소재를 만드는 우리는 첨단업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업종에 대한 획일적인 환경 규제를 철폐하고 기업별로 사후적인 관점에서 (환경)법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타개책은 무엇일까. "뿌리기업을 지금처럼 개별 기업으로 관리해선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업종별로 집적화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입지 여건을 조성해줘야 합니다. 좁고 열악한 지금 입지 여건으로는 솔직히 외국 바이어를 공장에 초청하기조차 두렵습니다."

신 위원장은 "인허가 하나를 받으려고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환경부, 지자체를 수차례 오가야 하는 게 지금 뿌리기업 현실"이라며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없는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뿌리산업이 살기 위해선 결국 외국 진출을 통한 자생력 확보가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과 함께 현지에 동반 진출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최소 1~2년간 적자는 각오해야 한다"며 "소규모 영세기업은 이러한 현실을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 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 뿌리산업은 돈·사람·땅 없는 3無…인센티브로 인력 유치를
독일 마이스터처럼 뿌리업체 근로자에 과감한 지원책 필요


경북 구미 금형업체들이 구미산업단지 내 땅을 사들여 이주한 깨끗한 금형단지. 사업체 중 한 곳인 영우정공 직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뿌리기업들은 작업 환경만 개선해도 인력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정부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기피 업종으로 취급받던 도금업체 6개사가 2011년 말 경기도 시화산업단지에 만든 집적화 단지인 `에코그린센터`. 20여 개 뿌리기업이 스스로 만든 이 센터는 현대화 시설, 공동 폐수처리장치 등 최신 설비를 갖춰 뿌리산업 현장답지 않게(?) 깔끔하다. 그 결과 거짓말처럼 젊은 인력이 몰려 과거 50대였던 근로자 평균 연령이 30대까지 내려갔다. 뿌리산업계 `고질`인 인력난을 해소할 자그마한 돌파구라 할 수 있다. 뿌리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다. 지난해 3월 산하기관인 생산기술연구원에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를 만들어 지원 업무를 맡겼다. 하지만 이 조직과 시스템으로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뿌리 실리콘밸리` 같은 첨단화 단지를 전국 곳곳에 조성하기 위해 부처 간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는 불가능하다.

◆ 컨트롤타워가 없다

특히 뿌리기업이 공장을 증설하거나 옮기려 할 때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꺼릴 때가 태반이다. 법적으로만 보면 환경부나 지자체는 뿌리기업이 기준치 이상으로 유해물질을 배출하는지, 지역사회나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사후적으로 관리할 권한만 있을 뿐 입주 자체를 막을 명분은 없다.

한 도금업체 사장은 `산업부→지자체→환경부→산업부`를 계속 돌고 돈 끝에 5년 만에 겨우 인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볼트업체 A사는 충북 진천에서 공단을 조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그곳에 입주했다. A사 부품을 열처리와 표면처리하는 하도급 뿌리업체 중 일부가 같은 공단으로 이전하려 했다. 하지만 뿌리기업들은 `공해 업종은 배제한다`는 단서에 걸려 못 가고 말았다. 해당 업체 중 한 곳 사장은 "볼트업체도 열처리ㆍ표면처리 시설을 일부 갖추고 있는데도 입주 허가를 받았다"며 뿌리기업들이 배제되는 현실에 분통을 터트렸다.

이상목 생산기술연구원 본부장은 "원스톱 솔루션을 제시할 컨트롤타워를 만들지 않고는 부처 간에 난마처럼 얽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 뿌리산업 진흥 실천방안이 없다

뿌리기술 연구개발(R&D) 진흥을 위한 구체적인 액션플랜도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해 말 관계부처 합동으로 40쪽 분량으로 된 `제1차 뿌리산업진흥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기획재정부ㆍ중기청 등 범정부 차원에서 만든 이 계획에는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뒷받침할 59개 과제가 마련됐다. 올해 예산도 791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2% 늘어났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학계와 현장의 시선은 까칠하다.

서울 지역 한 공대 교수는 "정부가 거시적인 목표와 실행계획만 잡았을 뿐 어떻게 이를 조목조목 실현하겠다는 촘촘한 액션플랜이 없다"고 꼬집었다.

충남 소재 금형기업 A사 관계자는 "당장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만한 뿌리기업부터 가려내 영세기업과 선별적인 R&D 투자를 해야 한다"며 정부 측의 두루뭉술한 R&D 지원 정책을 꼬집었다.

◆ 인력 유인할 인센티브 줘야

박철우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인재들이 뿌리기업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물질적 인센티브를 주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상목 본부장도 "인력 양성보다 인력 공급이 우선이다. 뿌리기업에서 몇 년 이상 일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 돈이 양성하는 것보다 적게 들어간다"며 직접적 지원책에 동감했다.

실제 뿌리산업과 깊은 관련이 있는 독일 마이스터가 그런 제도다. 뿌리기업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종업원을 대상으로 직무능력을 평가한 후 정부가 급여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유봉영 한양대 재료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키웠는지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교수는 "반도체가 제대로 성장한 것은 정부가 재료공학과와 전자공학과를 대폭 지원하고 키웠기 때문"이라며 "뿌리산업도 결국 고급 인력이 필요한데 이를 제대로 실현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인력 양성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센티브를 통한 인력 공급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리즈 끝>

[기획취재팀=민석기 팀장 / 전정홍 기자 / 정순우 기자 / 김정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