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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고 전도사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
길벗 道伴
2013. 10. 2. 14:48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 매주 블로그에 20장짜리 과학에세이 게재…댓글 단 직원에게 일일이 답글
CEO 오피스 - 과학적 사고 전도사 최치준 삼성전기 사장
폭넓게 사고 하라,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생각해야 살아남는다
폭넓게 사고 하라,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생각해야 살아남는다

최 사장 리더십의 뿌리는 ‘과학적 사고’에 있다. 그가 취임한 뒤 임직원들은 ‘과학적 사고’와 ‘학습의 생활화’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그리고 거의 매주 최 사장이 사내 인터넷에 올리는 최소 A4 용지 20장이 넘는 길고도 난해한 ‘CEO 블로그’ 글을 읽어야 한다.
최 사장의 글은 웬만한 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그가 올린 ‘전문화와 상호작용’ 블로그 글은 하나의 큰 에너지 덩어리가 빅뱅을 일으키고, 여기서 우주가 탄생해 태양계가 형성된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태양계에서 태양은 에너지를 공급해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게 해주고, 달은 중력으로 조수간만의 차이를 만들어 지구 생태계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얼핏 보면 업무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런 글을 임직원에게 권하는 것은 우주가 이처럼 같은 뿌리에서 나와 각각의 별이나 행성으로 ‘전문화’됐지만 서로 중력과 에너지로 연결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조화로운 우주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주처럼 삼성전기의 △연구개발 △생산 △인사 △기획전략 등 전문화된 조직들도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스스로 조직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과학적으로 사고해야’ 고도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 사장은 직원들을 위해 이 같은 글을 거의 매주 올린다. A4 용지 20~30장짜리 글을 주말이면 집에서, 또는 사무실에 나와 위키피디아 등을 뒤져가며 직접 쓴다. ‘전문화와 상호작용’ 글도 지난 1월 설 연휴 때 썼다. 그는 과학적 사고에 대한 학습을 통해 회사 내에 ‘위키피디아’식 지식소통 체계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각종 개발과제 등을 진행할 때 기술보고서를 만드는 것을 제도화하고, 이를 사내 인트라넷으로 연결시켜 누구나 수정 및 보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최 사장은 “과학적 사고가 없으면 마치 블록으로 나눠 건물을 지었는데, 나중에 결합해보니 서로 맞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지어야 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의 글에 직원들은 수많은 댓글을 쓴다. 그도 댓글 하나하나에 정성껏 답글을 달아준다. 임직원들이 ‘열공’하며 따르는 건 최 사장이 실제 이 같은 과학적 사고를 실천해 결과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계 1위를 바짝 쫓고 있는 MLCC가 그 결과물이다.
삼성전기는 최 사장이 서울대 금속공학과, KAIST 박사를 마치고 삼성에 입사했던 1986년 MLCC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MLCC는 무라타제작소, TDK, 다이요유덴 등 일본 회사들의 전유물이었다.
최 사장은 삼성종합기술원에서 MLCC 연구를 하다 1991년 삼성전기로 옮겨 실제 개발을 맡았다. 그러나 2년 뒤인 1993년 부친이 별세하면서 경영하던 회사도 경영난에 빠졌다. 최 사장은 1995년 삼성전기를 그만두고 부친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삼성전기는 2002년 그를 다시 불러 MLCC 사업팀장(상무)을 맡겼다.
2001년까지도 삼성전기 MLCC 점유율은 3%(업계 8위)에 불과했다. 일본 회사들은 원자재와 설비를 삼성전기에 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원자재는 교세라 등 MLCC를 직접 만들지 않는 회사에서 사오고, 설비는 중고품을 구했다. 그러다보니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없었다. 무라타 등이 세계 최초 제품을 만들어 몇 년간 비싼 값에 팔고나면, 그때쯤 생산을 시작한 삼성전기로선 수익을 낼 수 없었다.
최 사장은 과학적 사고로 결단을 내렸다. 그저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계 최초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돈을 벌기 어렵고, 세계 최초 제품을 생산하려면 일본처럼 자체적으로 원자재·설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0년 이상 적자인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모험이었다.
2005년 삼성전기는 똑같은 크기에 용량을 두 배 키운 제품을 포함해 세계 최초 제품을 3개나 내놨다. MLCC 매출이 연평균 30%씩 성장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날개를 달아줬다. 일본 경쟁사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 최 사장은 ‘모바일 시대가 오면 더욱 작고 뛰어난 MLCC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설비 증설에 나섰다. 2009년 점유율 17%로 업계 2위가 됐다. 올 상반기 점유율은 24%로 높아졌다.
최 사장은 “외국어를 배우면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부만 강조하는 모범생 같은 스타일이지만 바둑(아마 5단) 당구 등도 수준급 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