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영화 `관상`이 경영자에게 주는 메시지

길벗 道伴 2013. 10. 12. 22:02
*.영화 `관상`이 경영자에게 주는 메시지
데이터·성공공식 맹신 위험…변화의 흐름을 읽어라
기사입력 2013.10.04 13:42:41

어느 대기업 회장은 신입사원 채용 시 역학자를 대동했다고 한다. 관상을 보기 위해서다. 자신의 측근 조직으로 전체 비즈니스 그룹을 이끄는 중추 역할을 해야 할 비서실 직원들은 관상이 훌륭해야만 뽑힐 수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최고경영자(CEO)는 인재들이 수집한 다양한 정보들을 종합해서 스캐닝하는 초권위적 존재다. 그렇지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을 한몸에 안아야 하는 부담도 지니고 있다. 지난 9월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이 관객 수 800만명의 기염을 토하며 성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작품 자체는 수양대군과 김종서 간 갈등 국면인 계유정난(癸酉靖難)을 관상이라는 문화적 상징으로 엮어낸 픽션 사극이다. 과연 사람의 관상 또는 통계적으로 조합된 인상에 대한 판단이 경영 의사결정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되짚어볼 만한 과제다.

관상가 김내경 : 전략적 예측을 위한 컨설턴트

극중 주인공인 김내경(송강호 분)은 폐족(廢族)의 한을 품고 있는 역학자(易學者)다. 그는 경서나 법전을 공부하는 일반적인 양반들과 달리 관상학을 꾸준히 파서 대가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다가올 위험을 방지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역량에 극도로 의존한다. 김내경의 관상 보기는 특정 기간 수집된 통계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패턴을 예측하는 시뮬레이션에 가깝다. 사람의 인상에 대한 그의 지식은 매우 방대하다. 그리고 그 인상별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즉 사례까지 꾸준히 습득해 왔기에 99% 적중이라는 신화적 기록을 갖고 있다.

김종서 : 데이터 자체와 과거의 성공 공식에 집착

영화 `관상`의 이야기 전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주인공 김내경보다는 그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경영자들, 즉 김종서와 수양대군이다.

세종 때부터 문무를 겸비한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김종서(백윤식 분)는 `의도된 전략(Intended Strategy)`의 전문가로 볼 수 있다. 오랫동안 기반을 다져온 그는 폭넓은 관료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핵심 역량인 유학적 지식과 전통적 권위의 힘을 빌려 사대부 출신인 김내경의 마음을 샀다. 그리고 그의 관상학을 합법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관상은 육조(六曹)의 관료를 뽑는 인사관리시스템에서부터 수양대군 세력에 대한 위험관리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정보시스템이자 시뮬레이션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김종서의 가장 큰 실수는 과거 데이터와 성공공식을 기반으로 미래를 진단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예측불허의 환경 변화가 거시적인 차원으로 몰려올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계유정난은 데이터 관리가 아니라 신속한 의사결정 자체가 중요한 필드 차원의 변화였다. 쿠데타로 희생당한 한때의 영웅 김종서는 체계성을 추구하다 유연성을 잃어버린 꼴이다.

수양대군 : 임기응변에 능한 전략적 경영자

반면 수양대군(이정재 분)의 경우를 보자. 그 역시도 김내경의 관상학이 지니는 전문성과 설득력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관상 자체보다는 그것이 대중의 심리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어려서부터 적응력과 네트워크의 명수로 인정받았던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움직여 관상가와 그 주변의 쿠데타 저지 노력조차도 하나의 노림수로 활용하려고 한다. 원래 좌뇌형 의사결정에 능했던 그는 전략적 상상력이 풍부한 한명회를 통해 관상이 지니는 정치적 가치, 상징성을 바꿔 버렸다.

상황 대응에 강한 수양대군은 `우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의 대가다. "이미 왕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예언을 해서 무엇하는가"라며 김내경에게 핀잔을 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모든 데이터나 자원은 그 자체로서 효용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관상`을 실용주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수양대군의 모습에서는 반대파에 대한 잔인무도함과 절차적 정당성(Procedural Legitimacy)의 상실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IMF 위기 시절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을 외치며 컨설팅회사를 기용해 무차별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독재자형 최고경영자(CEO)들 모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집권 후 다시 자신을 찾아온 한명회에게 김내경은 회한에 가득 찬 얼굴로 "바람을 읽었어야 했다. 당신들의 쿠데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또한 바람이 아니라 파도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관상이라는 과거의 정보체계에 골몰해 즉흥적 의사결정과 변화 적응의 자세를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반성이다. 정당성 없이 데이터를 술책의 도구로서만 이용하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질타를 가하고 있다. 경영학적으로 번역하자면 관상은 한 사람의 인상에 나타나는 로드맵(Roadmap), 지향성(Orientation)이다. 기업의 전략적 덕목이 시대에 따라 변하듯 바람직한 얼굴과 그 가치에 대한 관념도 계속 변해 왔다. 김내경의 동료였던 기생 연홍(김혜수 분)의 "사주(四柱) 불여(不如) 관상이요, 관상 불여 눈치라"는 귀띔을 경영자들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그 효과를 판별하기 위해서는 맥락과 의사결정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천영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창조경영센터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