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마네의 그림이 사랑을 되살린다

길벗 道伴 2013. 10. 21. 08:28

마네의 그림이 사랑을 되살린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기억·희망·슬픔·이해…"예술속에 인생이 있다" 알랭드보통이 쓴 철학서
기사입력 2013.10.18 15:58:39 | 최종수정 2013.10.18 17:52:47

지구의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의 관성도 거스를 수 없다. 황홀했던 첫 만남은 결국 익숙함으로 귀결된다. 권태기에 빠진 연인은 묻곤 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오래된 연인이 사랑을 회복할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예술작품일지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보라고 말한다.

식재료에 불과한 이 다년생 개화식물은 마네의 붓놀림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 오늘날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아스파라거스가 담긴 접시에서 행복하고 남부럽지 않은 삶의 한 이상을 보게 된다.

연인과 예술가는 똑같은 인간적 약점에 부딪힌다. 쉽게 지루해지고,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단 알고 나면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선언하는 보편적 경향이 그것이다. 따분해져 버린 것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되살리는 능력은 위대한 예술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 작품들은 이미 익숙해져서 간과하기 쉬운, 경험의 감춰진 매력을 일깨운다.

오랜 연인 관계에서 현재에 안주하는 습관을 버리고자 할 때 우리는 마네가 그의 채소에 발휘했던 변형의 상상력을 우리의 연인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타성에서 벗어나 선하고 아름다운 면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관성을 거스를 수 있다.

사랑, 여행, 건축, 철학, 노동, 권태에 이르기까지 세상사의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한 글을 써온 알랭 드 보통이 또 한 권의 흥미로운 책을 썼다. 이번에는 주제가 예술이다. 우선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과 대화하며 빼어난 예술작품 140여 점을 골랐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까?` 같은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준다.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쓴 책들과 다른 지점은 예술작품들을 단지 호기롭게 각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예술의 가치에 대해, 인생에 대해, 사랑의 효용에 대해 이야기하며 슬며시 그림을 우리 앞에 보여줄 뿐이다.

`예술은 왜 우리에게 중요한가`라는 의문에 알랭 드 보통은 `도구로서의 예술`을 말한다. 명성이 자자한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찾아갔을 때 우리는 왜 예상했던 변화의 경험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면서 실망하고, 더 나아가 어리둥절함과 무능하다는 느낌을 품은 채 문을 나서기도 한다. 문제는 주류 예술계가 예술을 가르치고, 팔고, 보여주는 방식에 있다. 그는 예술의 높은 지위를 신비한 영역에 남겨두지 말고 다른 도구들처럼 예술을 대하자고 제안한다. "단지 예술은 우리의 어떤 타고난 약점들, 이 경우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심리적 결함이라 칭할 수 있는 약점들을 보완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을 알려준다.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이다. 어떤 예술작품은 주술적인 힘이 있다. 어떤 그림은 사랑의 첫걸음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는 힘이 있다. 니콜로 피사노의 `목가시:다프니스와 클로에` 같은 그림은 슬프게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애정의 느낌을 되살려준다. 이 그림은 아련하게 사랑의 환상을 되살려낸다.

게다가 예술은 무엇보다 즐겁고 유쾌한 것들을 시야에 붙잡아 둔다. 예쁜 미술작품의 쾌감은 불만족에 기인한다. 만일 인생이 고되지 않다고 느낀다면, 아름다움은 현재와 같은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다시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 예술은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 리처드 세라의 설치작품 `페르난도 페소아`는 거대한 먹색의 철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보는 이에게 슬픔에 깊이 침잠하라고 권유한다. 이렇게 예술은 삶에서 슬픔이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를 깨우쳐주고, 우리는 그로 인해 곤경 앞에서 덜 당황한다. 곤경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조건인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볼 수 있는 유리한 관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톱니처럼 솟아난 바위와 한적한 해변을 그린 `해변의 암초`를 마주하면 결혼생활의 긴장과 직장에서의 좌절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주라는 광대한 구조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

원제는 `치유로서의 예술(Art as Therapy)`이다. 작가는 예술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철학적이고 섬세한 문장과 세기의 예술작품이 만나 읽는 이를 매혹시키는 책이다. 예술의 효용을 믿지 못하는 완고한 불신자라고 해도 저항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