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한글은 보물지도…진짜 보물은 어디에?
길벗 道伴
2013. 10. 21. 14:19
한글은 보물지도…진짜 보물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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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0.18 13:1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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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자권인 중국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고 양반 지배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던 1443년 봉건 조선 시대에 세종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문자를 개발하여 백성들에게 보급하려 했던 것일까.
한글 창제의 결과가 결국 봉건 지배체제의 붕괴를 몰고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세종은 알고 있었을까. 세종은 몇 백년 후를 내다보고, 모든 사람은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해 민주주의(Literal Democracy)`의 개념을 미리 실천한 것일까. 결과물인 한글의 위대함은 물론이려니와 창제의 동기와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 준 세종의 정신 또한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야 할 중요한 문화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슬프다. 한글의 위대함에 젖어 살아 온 567년 동안 우리는 이 한글 창제의 정신과 참가치를 극대화하고자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까.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모든 사람이 쉬운 한글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라는 것인데 우리의 소통 현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밑바닥 수준이다. 단순 문맹률은 3% 미만이지만(1998년 기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2001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의약품 복용량 설명서, 구직 원서, 지도 등 일상적인 문서를 이해해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비교한 문서 해독 능력(실질 문맹률)에서 우리나라 성인 중 38%가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전문적인 정보기술(IT)`, 첨단 정보와 새로운 기술, 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 해독 능력을 지닌 사람은 2.4%에 불과해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ㆍ캐나다(이상 25.1%), 미국(19%)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며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한 문서 독해 능력에서도 역시 최하위로 나타났다.
우리는 해방 이후 한글의 우수성에만 취한 나머지 `국어 교육`만을 강조하면서 사회 생활에 더 필요한 `언어 교육`을 받지 못했다.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배우지 못했고, 생활에 극히 필요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도 기르지 못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글쓰기마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사지선다형 국어 시험에만 매달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참으로 필요한 언어 교육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보물지도를 그저 보물로 알고 살아온 것이다.
그토록 자랑스럽고 유일무이하다는 훌륭한 한글을 가지고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한글 전용을 해야 하느니, 외국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느니와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만이 난무하다.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쉬워 한나절이면 익힌다는 한글은 보물지도이다. 우리는 이 보물지도로 더 인간적이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소통 수단으로서 우리 언어를 살려나가는 진짜 보물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찬규 중앙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