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인간은 합리적이다. 장기적으로!

길벗 道伴 2013. 10. 21. 16:33

 

인간은 합리적이다. 장기적으로!

 

합리성은 인간의 중요한 능력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3살짜리 아기도 압니다. 비합리적인 인간이 거래하는 시장이 효율적일 수가 없습니다. 비합리적인 인간이 한껏 부에 대한 욕심을 품고 뛰어든 주식시장이 효율적일 수는 더욱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보가 아니라 천재입니다. 이번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유진 파마(Eugene Fama)가 대표적입니다.

 

파마의 주장대로 시장이 완벽하게 효율적이어서 시장의 방향은 임의적(random)이라고 한다면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모든 경제지와 그 경제지를 구독하는 모든 사람들은 쓸 데 없는 일에 돈과 시간을 쓰는 셈입니다. 인덱스펀드에 돈을 묻어 놓고 놀러 다니면 되는데, 유망종목 발굴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하루 종일 진을 빼고 있으니 말입니다. 워렌 버펫 같은 사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던 사람일 뿐이지, 그가 무슨 종목을 발굴하는 혜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따라서 버펫을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은 바보가 됩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바보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파마 교수가 바보는 더욱 아닙니다. 천재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바보일까요? 블룸버그의 칼럼 노벨은 현실 경제학의 기초가 필요하다(Nobel Needs Grounding in Reality-based Economics)에 따르면 올 해의 노벨상 위원들입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은 이미 여러 차례 현실의 시장에서 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설의 대부에게 노벨상을 안겨주는 결정을 내렸으니 말입니다.

 

 

인간의 행동이 단기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은 여러 차례 일관되게 실험에 의해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를 잘 정리한 논문이 비정상: 효용 극대화와 경험 효용(Anomalies: Utility maximization and experienced utility)”입니다. 학술지 경제전망지(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006 20 1호에 게재된 논문입니다. 2002년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과 리처드 셀러가 공저자입니다. (올해도 2002년처럼 행동재무학자가 단독 수상했어야 합니다.)

 

효용(utility)은 크게 결정효용(decision utility)과 경험효용(experienced utility)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결정효용은 원함입니다. 산출물에 대한 선호도나 욕망입니다. 경험효용은 산출물에 관련된 쾌락적인 경험입니다. 테슬라 전기차 모델S를 구매한다고 할 때, 모델S에 대한 선호를 설명하는 게 결정효용이고, 모델S를 사서 경험하는 쾌락이 경험효용입니다. 당초 경제학은 결정효용과 경험효용 모두 효용의 개념에 포함시켰는데, 20세기 초에 경험효용을 제거했습니다. 사람들이 즐길 것(쾌락을 경험)을 항상 원한다고 한다면 굳이 결정효용과 경험효용을 구분할 필요가 업습니다. 그래서 20세기 주류경제학은 경험효용(쾌락의 경험)은 빼고 무엇을 원하는지(결정효용)만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주류 경제학이 가정한 것처럼 인간은 의사결정과정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면 그 선택이 쾌락으로 이어질 지 여부를 정확하게 편견 없이 예측할 수 없습니다인간은 결정효용만으로 그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무엇을 좋아하는지 계산해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효용을 극대화의 관점에서 보면 체계적으로 오류를 범합니다. 아래는 그 사례입니다.

 

1.     현재 감정 상태의 효과

시장에서 일주일 치 식품을 구매할 때 현재 구매 시점에서 배가 고픈 사람과 배가 부른 사람은 구매품목과 양에 차이가 있을까요?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지금 배고프다고 일주일 내내 배고픈 게 아니고, 지금 배부르다고 일주일 내내 배부른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재 배가 고프면, 배가 부른 사람에 비해, 식료품을 더 많이 구매합니다. 현재의 감정상태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전망편견(projection bias)이라고 합니다.

 

2.     선택 맥락의 효과

세 종류의 과자를 선택할 때, 한꺼번에 선택할 때와 나눠서 선택할 때, 그 선택 양식이 다를까요?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한꺼번에 제시되건, 차례로 제시되건 과자의 효용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한꺼번에 제시되면 사람들은 각각 다른 종류의 과자를 선택하지만, 차례로 제시되면 한 종류만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     과거로부터의 학습

상품 혹은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그 상품 혹은 서비스에 대한 경험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기억에는 편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속시간에 대해서는 둔감합니다. 가장 강렬했던 경험과 최근의 경험에 대해서는 민감합니다. ,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오래도록 제시했어도, 강렬했던 경험이나 마지막의 경험이 불쾌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 서비스에 대해 부정적인 기억을 갖게 됩니다.

 

4.     적응에 대한 과소평가

온화한 해안에 살면 꽤나 행복할 것이고,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혹한이 몰아치는 내륙에 살면 삶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해안에 사는 사람들과 내륙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느 지역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냐고 질문하면 모두 온화한 해안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러나, 본인들의 행복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두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 적응하기 때문입니다. 두 다리를 잃는 비극적 사건이건, 거액의 복권이 당첨되는 행운이건,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적응함에도 불구하고, 적응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체계적인 오류로 인해 시장의 움직임은 단기적으로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비효율성은 극복됩니다. 이러한 단기적인 비효율성이 장기적으로 효율성을 찾아가는 편차를 잘 활용해 시장에서 초과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됩니다.

 

단기적으로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하는 20세기 주류 경제학이 옳다고 생각하시면, 오늘부터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모든 경제지 구독을 다 끊고, 인덱스펀드에 돈 묻어 두고 편하게 살면 됩니다. 금융 관료도 최소인원만 빼고 모두 해고해 정부 재정을 절약해야 합니다.

 

반면,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적이라는 21세기의 행동경제학이 옳다고 생각하신다면, 열심히 세상 돌아가는 공부하시고, 공포와 탐욕을 조절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금융시장은 적절하게 규제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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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 시장 가설을 조롱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5만원 권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효율적 시장 가설을 신봉하는 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게 정말 5만원 권이라면, 거기 남아 있지 않았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