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셰익스피어도 경고했던 경영자의 `의심병`

길벗 道伴 2013. 11. 5. 09:37

Culture & Biz] 셰익스피어도 경고했던 경영자의 `의심병`
500년전 `오셀로`는 `의심병` 경영자, 의심과 질투가 판단력 흐려 비극
직원 못믿고 모니터링 지나치면 의사결정의 효율성·신속성 떨어져
감시나 경고가 아닌 유대감 내세워 조직내 의심과 경쟁습관 막아야
기사입력 2013.11.01 13:36:38

의심은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불확실할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이라는 말로 설명해 왔다. 누군가에게 강한 의심을 갖고 있는 경영자는 조직 내에 수많은 모니터링 기제를 설치한다. 얼마 전 재무구조 악화로 몰락한 어느 대기업 사정도 비슷했다고 한다. 조직 곳곳에는 비선(秘線) 그룹이 있었고, 창업주 집안 출신이 아닌 CEO는 사내 입지가 불안했으며, 본인도 이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의사결정에 효율성과 신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500여 년 전 셰익스피어도 비슷한 경고를 했다. 그의 명작 `오셀로`는 경영자의 의심병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 가장 번성했던 도시국가 베네치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 비극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탄식으로 가득 차 있다.

주인공 오셀로는 이탈리아가 아닌 북아프리카 출신 군사령관. 군사 작전에 유능하고 민첩한 업무 처리 감각을 지녔지만 누군가에게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해한다. 베네치아 정부는 영웅이 탄생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해 성공한 리더가 나타나면 반드시 그를 견제할 만한 대항마를 세우는 것이 관례였다.

한편 그의 참모 이야고는 상사인 오셀로를 믿지 못한다. 게다가 부관 카시오가 수차례 전장에서 공을 세우자 오셀로가 자신을 해임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또 원래 베네치아 출신인 자신과 달리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승진한 오셀로에게 질투를 느낀다. 상사가 부인을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몽상에 시달리는 장면에서는 의심과 질투가 한 사람의 판단력을 얼마나 흐리게 하는지 실감케 한다.

셰익스피어는 항상 주인공에 대비되는 악역을 깊이 있게 묘사하는 작가였다. 이야고는 군부 참모인 자신이 조직 전체에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오셀로와 카시오를 한꺼번에 해칠 음모를 꾸민다. 오셀로 부인 데스디모나가 카시오와 불륜에 빠졌다고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것이었다.

오셀로는 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처음에 그는 대범한 인물인 척했다. 그러나 참모 이야고가 계속해서 의심할 만한 사건들을 이야기하자 그 스스로 `소설`에 빠지고 말았다. 이야고는 심지어 시각적으로 상황을 조성하기까지 했다. 오셀로가 데스디모나에게 선물한 수건을 카시오 거처 앞에 떨어뜨려 상황을 조작해 낸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데스디모나와 하녀 에밀리아 간 대화를 통해 의심하는 습관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경고한다.

-데스디모나 : 어쩌지? 하지만 난 의심받을 짓을 하진 않았잖아.

-에밀리아 : 의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대답이 통하지 않는 법이죠. 이유가 있어서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의심 때문에 의심하는 거니까요. 의심이란 스스로 생겨나거나 태어나는 괴물이랍니다.(최종철 역, 셰익스피어 원작 `오셀로`)

사회학자들은 상대방의 기회주의적 행동이 걱정스러울 때 그 관계의 속성이 어떤지 진단해 보라고 말한다. 교환이론(Exchange Theory)은 인간관계의 속성을 가치교환의 네트워크와 자원교환의 네트워크로 구분한다. 그리고 전자에 대해서는 신뢰와 공감을, 후자에 대해서는 모니터링과 분명한 계약 행위로 대처해야 한다고 언급해 왔다.

오셀로는 아내인 데스디모나와 충직한 부하 카시오에 대해 의심을 하기 전 자신과 그들 간 관계의 본질을 다시금 떠올려 봐야 옳았다. 자신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이야고는 실상 적군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오셀로는 실패했다. 남편으로서, 조직의 지도자로서 균형 감각을 유지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충직한 부하와 정직한 부인을 매도한다. 오셀로는 결국 미쳐버렸고 부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실제로 데스디모나와 카시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몽상이 진실을 왜곡하는 효과가 난 것이다.

오셀로처럼 빠른 속도로 성공한 리더들은 적이 많다. 경쟁자들을 주변부로 밀어내는 역량이 탁월했기 때문에 당연히 타인의 악평과 거짓 정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CEO가 견지해야 할 것은 스스로에 대한 강한 신념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회적 지지를 계속해서 재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감시나 경고가 아니라 유대감과 공유의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내세워 조직 안에서 의심과 소모적인 경쟁 습관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조직 내 관계들이 지니는 여러 양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의심에 빠진 오셀로를 몰락시킨 것은 그 자신이었다. 경영자가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정보 체계를 강화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상대방 행동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관찰된 결과와 관계 없는 선입견이 넘쳐난다면, 그 순간 경영자들은 의심이 자신을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천영준 연세대 경영대학 창조경영센터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