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산업 클러스터를 가다 / 네덜란드 `푸드밸리`◆
자외선으로 해충과 병충해를 일으키는 미생물을 죽이는 기술을 개발한 캐나다 기업 `클린라이트`. 8명의 연구원으로 출범한 이 기업은 5년여 만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하마터면 그 기술을 썩힐 뻔했다.
개발을 끝내고 시장에 내다 팔려고 보니 치명적인 결함이 여러 개 드러났던 것. 자외선 장치 작동시간이 길어지면 자외선 발광이 불안정해지고 살균 정확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나타난 것이다.
상업화를 위해서는 이런 문제점을 말끔히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클린라이트는 비료사업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외부와 협력연구가 절실했다.
그러나 캐나다 현지에서는 사업파트너를 찾을 수 없었다.
연간 20억달러 규모를 형성하고 있는 화학비료시장을 지키기 위해 비료 제조업체들이 자신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공개하지 않은 탓이다.
때문에 연구를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하고 1년여 시간을 끈 끝에 결국 네덜란드 `푸드밸리`로 연구소와 공장을 옮겼다.
클린라이트가 푸드밸리에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게 된 것은 이곳이 수준 높은 연구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사업화에 대한 마인드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클린라이트는 이곳에서 협력연구를 통해 자외선 안정화 기술을 얻고 살균 정확도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조만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대박`을 터트릴 꿈을 안고 상업화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 아르네 에이킹 대표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경쟁업체들이 전혀 협력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 오니 모든 것이 열려 있었다.
경쟁업체라고 하더라도 미래지향적인 기술에 대해서 충분히 논의하고 공동연구도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 열린 사고가 네트워킹을 주도하는 힘 =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85㎞ 떨어진 소도시 바헤닝엔. 이곳은 본래 유럽 제1 농업대학인 바헤닝엔대학이 있는 곳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이지만 지금은 네덜란드 식품 클러스터인 푸드밸리의 중심지로 더 잘 알려졌다.
바헤닝엔대학을 중심으로 각 기업체 연구소가 들어서고 생산설비가 입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럽 최대 규모 식품산업 집적단지로 성장한 것이다.
식품산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470억유로. 우리 돈으로 약 58조7000억원(1유로당 1250.45원 기준) 규모다.
네덜란드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한다.
이 중 50% 이상을 수출에서 번다.
네덜란드의 외화 획득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고용창출 효과도 눈부시다.
약 70만명이 이곳 푸드밸리에서 일자리를 갖고 있다.
전 세계 단일지역에 자리잡은 식품산업단지 중 가장 많은 경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비결이 뭘까. 그건 다름 아닌 `열린 사고`다.
혁신적인 기술개발과 이익창출이라는 공동 목표가 협력연구를 이끌고 공동사업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버놀드 켐퍼링크 푸드밸리 부사장은 "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입주한 기업체와 연구기관간 협력이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네트워킹"이라며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구성원간 열린 사고와 문화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유니레버의 성공은 이런 토양에서 나왔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유니레버는 유럽지역뿐 아니라 아시아, 미주지역까지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는 유기농 소스 등 농산물로 만든 가공제품을 수개월 이상 장기 보관해도 전혀 변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유니레버는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던 식품업체인 스토크(STORK), A&F 등과 공동연구진을 구성해 순간고압을 줘 식품을 장기 보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이 기술은 유니레버 제품을 오랜 시간 안전하게 보관하는 핵심기술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 토마토 유통기간 연장 기술, 식품용 단백질로 널리 쓰이는 노벨 프로틴 푸드 기술 등이 클러스터 내 바헤닝엔대학과 연구소, 기업간 공동연구로 탄생했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이 기술들을 활용하고 있다.
푸드밸리에서는 농ㆍ축산물을 이용한 거의 모든 유형의 제품이 만들어진다.
육류 곡물류 등 1차 산물에서부터 우유 등 2차 산물, 기능성 발효유 등 3차 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심장기능을 강화하는 발효유 등 고부가가치 기능성 식품이 생산되며 클린라이트처럼 보다 나은 작물을 생산하기 위한 기반기술도 만들어진다.
◆ 정부 지원도 한몫 = 푸드밸리에서 정부 역할은 한정돼 있다.
그러나 외국자본 투자유치 같은 일, 다시 말해서 기업체가 단독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정부가 맡는다.
작은 정부지만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부 산하기관인 NFIA(Netherlands Foreign Investment Agencyㆍ네덜란드 외국투자청)는 해외 기업들이 푸드밸리에 투자를 하고 정착하도록 홍보에 적극 나선다.
그 결과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 지역에 투자된 230억유로 중 61%가 해외에서 들어왔다.
정부는 인프라스트럭처 구축도 적극 지원했다.
푸드밸리의 중심부인 바헤닝엔에서 유럽 최대 국제공항 중 하나로 꼽히는 암스테르담 공항과 뒤셀도르프 공항이 자동차로 45~7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네덜란드와 유럽 각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고속도로도 바헤닝엔을 통과하도록 했다.
유럽 최대 교역량을 자랑하는 암스테르담항과 로테르담항까지 직선도로로 연결해 기업활동을 위한 최선의 환경을 조성했다.
독일과 프랑스로 가는 도로도 바헤닝엔에 인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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