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어감은 부정적이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관습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장사를 하는 사람을 가장 천하게 여기고 멸시했다.
영국에서도 장사는 `고급 관료들의 가난한 친척`이 하는 것 정도로 여기고 업신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했고, 지금은 `장사의 시대`다. 하지만 여전히 `장사꾼`을 내려다보는 사회적 시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케팅이나 재무파트에 있으면 사람들은 감탄 어린 눈길로 보지만, `영업사원`이라고 하면 대개 무시한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파리 지국장을 지내던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필립 델브스 브러턴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갔다.
경영의 고수들이 모인 그곳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는 교수에게 왜 세일즈 강의는 없느냐고 물었다.
교수는 "꼭 세일즈를 공부하고 싶으면 어디 가서 2주짜리 야간 강좌를 들으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세일즈는 `설득의 정수`이며 `경영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사의 시대`를 펴냈다.
매일경제 MBA팀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브러턴은 세일즈가 학문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아직까지 학문으로 정착되지 못한 세일즈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사례를 책에 집어넣었다.
모로코 상인부터 홈쇼핑 스타, 보험왕, 데일 카네기 그리고 달라이 라마까지.
그는 인터뷰에서 "장사꾼이라는 말이 싫다면 설득가로 바꿔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장사는 설득이며, 설득은 심리전이고, 심리는 결국 인간의 기본인 마음"이라면서 "장사는 인간의 기본이며 본능"이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브러턴과의 일문일답.
-비즈니스에서 유독 `세일즈` 분야는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것 같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세일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
고도의 기술을 다루는 기업에서 흔히 내리는 오판 중 하나가 기술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팔지 못하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
세일즈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구글 본사를 방문해보라고 권한다.
구글 본사의 수개 층이 판매와 광고에 집중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세일즈가 무시받는 이유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가 아닐까.
▶오라클이나 보잉의 영업맨들을 보면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세일즈맨은 자신이 판매하려는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그 안에 녹아있는 기술에 대해 완벽에 가까운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설득력과 능력을 겸비해야 하며, 길고 험난하고 복잡한 세일즈의 과정과 사이클에 적응할 수 있을 정도로 노련하고 끈기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거대 글로벌 컨설팅펌을 잘나가는 엘리트 집단으로 보지만, 결국 그들도 장사꾼이다.
그들은 비즈니스 파트너와 고객을 확보하는 `세일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세일즈는 주먹구구식으로 해온 것 같다.
▶앞으로는 세일즈를 학문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세일즈는 무언가를 파는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인간심리를 공부해야 할 것이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고객의 마인드와 자기 스스로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팔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자신이 처한 환경은 어떠한지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결국 심리학을 배워야 한다.
여기에 `관계맺음`과 `설득`의 기본적인 테크닉을 익혀야 할 것이다.
또 `파는 행위`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경제적ㆍ심리적 가치를 어떻게 배분하는지도 가르쳐야 한다.
이런 것들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며, `가르쳐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무언가를 `파는 행위`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자각하진 못하는 것 같다.
▶`세일즈`나 `장사꾼`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를 `설득`이나 `설득가`로 바꿔보면 어떨까.
우리는 직장에서, 사생활의 영역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이들을 설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직장을 구할 때도, 친구를 사귈 때도, 아이를 키울 때도 항상 `설득`을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세일즈`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의 특정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것 아닌가.
결국 `세일즈=설득`이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고,
더 나은 가치 창출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게 바로 세일즈고, 설득이다.
-설득의 세일즈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달라이 라마나 넬슨 만델라는 훌륭한 정치인이지만, 훌륭한 세일즈맨이었다.
이들은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달라이 라마는 지루한 불교철학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중 앞에서 쉽고,
친근한 미소를 띠며 행복의 철학을 설파하는 방식으로 다가갔다.
넬슨 만델라는 철저하게 백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고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들을 감화시켰다.
이 같은 공감능력은 세일즈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또 하나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한다.
거절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화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회복탄력성이다.
모로코 상인 마지드는 "장사를 할 때는 거지처럼 온종일 매달리고 또 매달린다"고 털어놨지만,
그 다음날이면 그는 개의치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높은 회복탄력성을 가진 사람이 훌륭한 세일즈맨이 될 수 있다.
-언급된 수많은 세일즈맨의 사례가 있지만, 그 방식도 유형도 모두 다르다. 그래서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세일즈맨이 되는 세 가지 조건` 같은 것을 알려줄 순 없다.
그런 걸 기대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상당히 실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세일즈라는 것이 어려운 직군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분야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주고픈 세일즈 방법이나 기술이 있다면.
▶거부하기 힘든 재미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세일즈에서 풀어내라.
책에 나온 홈쇼핑의 사례를 봐라.
쇼호스트들은 직접 시연을 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라고 생각하게 하고, 결국 구매하게 만든다.
그 제품이 얼마나 좋고, 훌륭한지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성공한 세일즈맨의 조건으로 `행복`을 꼽았는데, 사실 훌륭한 세일즈맨 중 상당수가 가정에서 불행한 경우가 많다.
▶세일즈를 함으로써 얻는 대가가 있다.
그게 돈이 될 수도 있고,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대가 때문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망가진다면 세일즈 방식을 바꾸거나,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게 낫다.
`성공한 세일즈맨`을 `돈을 많이 버는 세일즈맨`으로만 정의하지 않았으면 한다.
돈은 세일즈에서 당신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수단 중 하나다.
성공한 세일즈맨은 돈을 많이 벌기도 하지만, 세일즈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그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심리적 압박과 장애물을 극복한 사람이다.
`행복한 세일즈맨`은 `성공한 세일즈맨`과 동의어이지 `돈을 많이 버는 세일즈맨`은 아니다.
-훌륭한 세일즈맨을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실제 `세일즈`를 시켜보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러나 면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10분 안에 자신이 가장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던 분야에 대해 설명해보라`는 질문을 추천한다.
이 질문을 받은 구직자들은 자신의 스토리로 상대방을 매료시켜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20여 년 동안 단 한 가지에 제대로 열정을 쏟지 못했거나,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매일 어쩌면 같은 물건을 팔아야 할지 모르는 세일즈에 어떻게 열정을 바치겠는가.
■ He is…
필립 델브스 브러턴은 1994년 옥스퍼드의 뉴칼리지를 졸업하고 기자 세계에 입문해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뉴욕 및 파리 지국장으로 일했다.
기자 자리를 박차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장사의 시대`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썼다.
그가 쓴 `하버드 MBA의 비밀`은 파이낸셜타임스와 USA투데이가
올해의 경영도서로 선정했다.
[박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