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함을 아는 것으로 착각…`메타인지의 함정` 피하려면 비전·전략 직원에 설명을 ![]() 우리는 종종 친숙한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이 무엇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엉뚱하게도 친숙함에 기초를 두고 판단한다. "대한민국의 수도 이름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답은 쉽게 나온다. "과테말라에서 7번째로 큰 도시 이름을 아는가?"라는 질문에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같은 속도로 쉽고 빠르게 나온다. 그런데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생각이 지닌 대단한 능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가 `모른다`, 즉 그 파일 혹은 정보가 하드디스크에 없다고 대답하는 것은 자신의 하드를 100% 검색해 보고 나서야 가능하다. 따라서 모른다는 대답은 안다는 대답보다 무조건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럼 인간은 어떻게 이 어려운 모른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가? 친숙함에 기초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과테말라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또한 `7번째로 큰 도시` 같은 이야기 역시 살아오면서 거의 접하지 않은 이야기다. 따라서 이 둘의 조합을 내가 알 리가 없다는 판단이 쉬운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 기제를 심리학자들은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 메타인지가 우리로 하여금 치명적인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순간이다. 실제로 우리는 종종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어떤 대상을 접하거나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삐걱대고 어려움을 겪는 순간을 경험한다. 도서관에서 자신있게 시험공부를 마치고 교실에서 시험지를 받자마자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학생, 고장나 멈춰 선 자동차의 보닛을 자신있게 열어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발견하곤 난감해 하는 운전자, 잘 알고 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그 계획의 중요한 세부사항들을 거의 모르고 있음을 느끼고 막막해 하는 경영자 등 수많은 사람이 `많이 봐서 친숙한 대상`에 대해 실제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음을 발견하고 난감해 한다. ![]() 그렇다면 친숙함이 우리로 하여금 빠지게 하는 함정은 여기가 끝인가? 아니다.
더 큰 함정을 만든다. 왜냐하면 친숙함은 우리로 하여금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고 이는 다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지도교수이자 `스마트 싱킹(Smart Thinking)`의 저자로 우리나라에도 꽤 익숙한 인물인 텍사스대학 심리학과의 아서 마크맨(Arthur B. Markman) 교수에게서 들은 말 중에 중요한 해답이 있다.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첫 번째는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남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지식이다. 두 번째는 알고 있다는 느낌도 있고 남에게 설명도 할 수 있는 지식이다"라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후자만이 지식이다 . 전자는 내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단순히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 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그 원리를 설명까지 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디를 어떻게 모르고 있고 따라서 어떤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수년 전 모 방송사와 함께 전국 최상위권 학생들이 평범한 학생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조사해본 적이 있다. 유일한 차이점이자 그들 내의 공통점은 메타인지가 뛰어나다는 것이었으며 이 메타인지는 설명하기를 통해서만 상승한다.
많은 점잖은 CEO들이 "말 안 해도 알지?"라고 하면서 자신의 의중을 폴로어들이 잘 알고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폴로어들도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된다. 의견을 모을 때는 자신의 입을 닫고 경청해야 하지만 자신의 전략은 최대한 친절하게 여러 대상에게 여러 번 설명해줘야 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 양쪽 모두를 위해서. -------------------------------------------------------------
![]() 살아가다 보면 밉거나 싫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달갑지 않은 일이나 사건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나 일들에 대해 우리는 일종의 미신과도 같은 규칙성을 믿고 있다. 이른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직장 상사나 얄미운 동료를 친한 주위 사람들과 험담할 때면 어김없이 그 당사자가 불쑥 나타나서 우리를 당황하게 한 경험이 누구나 몇 번쯤 있을 것이다. 또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주위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말린다. "그런 말 하지 마. 얘기하면 꼭 그 일이 일어나더라"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은 정말로 사실일까?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믿음은 왜 우리 마음속 깊이 뿌리잡고 있어 심지어는 하나의 속담처럼 되어 있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충족적 예언` 현상으로 설명한다. 이는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 일종의 믿음이나 기대를 가지게 되면 그 대상이 그 믿음과 기대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경우에만 이를 기억하거나 인식한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이를 마치 자신이 예언한 대로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실제로 우리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고 가정해보자. 비록 그 사람이 싫다고 해도 그가 늘 나에게 밉상인 행동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좋은 행동을 할 때가 있고 평범한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일단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가 하는 나쁜 행동만 유독 눈에 밟힌다. 그래서 흔히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것 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이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인간의 사고가 지닌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 이 현상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로 다시금 돌아와 보자. 내가 특정인을 만날 확률과 내가 대화 중에 그 특정인을 거론할 확률이 존재한다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마침 그 사람을 만날 확률도 일정하게 존재한다. 물론 이와 반대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경우나 그와 마주칠 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전자의 경우에만 유독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추정되는 원인과 그 원인의 결과라고 생각되는 현상 사이에서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가 모두 존재하는 경우에만 유독 눈길을 주는 셈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이루어진다` 는 말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 것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 ||||||||||||||||||||||
조직을 살리고 죽이는 `리더의 화법
우리는 어떤 말을 할 때 `~하지 않다`란 표현을 참으로 많이 쓴다. 그냥 반대의 의미인 `~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될 것을 굳이 부정적인 표현으로 돌려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심리학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코자 하는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대가는 크다. 부정적인 표현은 종종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러그는 조사 대상자에게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대중연설을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니요`란 의견이 62%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대중 연설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에 `예`란 의견은 46%로 줄었다. 전자의 질문에 대한 `아니요`와 후자의 질문에 대한 `예` 모두 결국 금지한다는 의미는 똑같은데도 전혀 다른 결과가 관찰된 것이다. `허락하지 않는다`와 `금지` 모두 의미가 같은 것 같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후자가 강도가 더 세며 때론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임신중절을 금지해야 한다`란 질문지보다 `임신중절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질문에서 `그렇다`는 반응을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다. `나를 사랑하나요`란 질문에 `사랑하지 않는다`란 대답을 듣게 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나를 단순히 좋아하는 걸까` `관심이 없다는 걸까`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는 걸까`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게 된다. 영어로 치면 `not`의 남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를 전달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 사이에서 그 의미의 정도나 강도 면에서 괴리가 발생해 결국 다양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킨다. 어떨때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할까. 바로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거나 책임을 덜 지고 싶을 때 이런 표현을 쓰게 된다. 국정감사에서 질문 공세를 받는 공직자들이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란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서다.
만약 조직의 리더가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면? 조직 구성원들이 해당 의미를 각기 다른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불협화음과 소통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의 표현은 명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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