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CEO 심리학

길벗 道伴 2013. 6. 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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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잘못 찍혔다간…무서운 `낙인효과`

지하철 ○○녀, 살인자 ○○…단정적인 명사정보 편견 낳아
사람을 판단할땐 `있는 그대로`
 
심리학에서 종종 이야기하는 것 중에 `낙인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명사 정보가 주는 신속한 판단의 장점과 편견의 발생이라는 단점을 모두 아우르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는 사람을 죽였대"라는 말과 "○○는 살인자래"라는 말을 보자. 두 표현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자보다 후자에서 우리는 무언가 더 강한 느낌을 받는다. 왜일까? 사람을 죽였다는 묘사보다는 살인자라는 범주, 즉 명사 정보가 더 강한 심리적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도 다르다. 전자의 표현을 들으면 "○○가 왜 그랬을까?" 등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반면, 후자를 들으면 "○○는 나쁜 인간이군!"이라는 식으로 단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범주로서의 명사 정보는 일종의 `심리적 도장찍기` 효과를 지닌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낙인 효과라는 말을 빌려 이야기한다.

그런데 낙인 효과는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해 평가하는 전반에 걸친 오류와 함정을 잘 말해주는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55세의 중년 남자로 서울 근교 신도시 거주자이고 대형 빌라 소유주이며 대기업 임원`이라고 사전에 정보를 들은 김갑동 씨를 지금 막 만났다. 이 사람은 그런데 `청바지를 입고 있고, 왁스를 바른 최신 유행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으며,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소 당황해 할 것이다. 하지만 김갑동 씨에 대해 사전에 들은 정보가 `상상력이 풍부하며, 다양한 활동을 즐기며, 외향적 성격`이었다면 어떨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모습 때문에 놀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무엇일가? 전자는 특정 인물의 명사화된 범주 정보를 나열한 것이고 후자는 그 인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에는 그 범주 정보들로부터 쉽고 빠르게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을 터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 묘사 자체에만 기초해 지금 있는 사람을 판단할 가능성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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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의 사회 현상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하철 ○○녀`라든가 `○○남`으로 어떤 사람을 불러놓고 그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격 혹은 행동 특징들까지도 우리는 `당연히 그렇겠지`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추론해 낸다. 물론 그렇게 추론해 낸 정보들이 그 사람과 맞아떨어질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명사화된 범주 정보로 어떤 사람을 쉽고 빠르게, 즉 쉽게 판단하고는 그 판단이 맞을 것이라는 착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 그릇된 판단의 중심이자 가장 큰 피해자는 나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보는 사람에 관한 서류에는 수많은 명사범주 정보가 존재한다. 출신지역, 출신학교, 형제관계, 예전의 직급 혹은 직함 등 말이다. 그런 범주들이 과연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굳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하지 않고서라도 그 설명 양이 얼마 되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성격이라든가 성향, 그리고 장단점을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그 사람을 여러 차례 다른 상황과 시점에 만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측면을 살펴봄으로써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지닌 특징들을 파악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압박이 많을수록 CEO들은 명사화된 범주 정보들에 눈길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자신의 고정관념을 만족시키거나 바라던 결과로 이어지기보다는 당황스럽게 만드는 경우를 만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쉽고 빠르게 내리는 결론이 대부분 틀린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에 대한 판단인 이유는 빠르게 인출된 고정관념이 내 판단을 장악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맨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최대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내가 원하는 인재상과 맞아떨어지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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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숙한 것과 아는 것의 차이

     

    친숙함을 아는 것으로 착각…`메타인지의 함정` 피하려면

     비전·전략 직원에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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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종종 친숙한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실제로 인간은 자신이 무엇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엉뚱하게도 친숙함에 기초를 두고 판단한다. "대한민국의 수도 이름을 아는가?"라는 질문에 "예"라는 답은 쉽게 나온다.

     "과테말라에서 7번째로 큰 도시 이름을 아는가?"라는 질문에도 "아니오"라는 대답이 같은 속도로 쉽고 빠르게 나온다.

     그런데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생각이 지닌 대단한 능력으로 볼 수 있다.

    컴퓨터가 파일이나 정보가 하드디스크에 있다고 간주해 `안다`고 대답할 수 있는 시점은 그 파일 혹은 정보를 검색해서 찾는 순간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모른다`, 즉 그 파일 혹은 정보가 하드디스크에 없다고 대답하는 것은 자신의 하드를 100% 검색해 보고 나서야 가능하다.

     따라서 모른다는 대답은 안다는 대답보다 무조건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럼 인간은 어떻게 이 어려운 모른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가?

     친숙함에 기초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과테말라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또한 `7번째로 큰 도시` 같은 이야기 역시 살아오면서 거의 접하지 않은 이야기다.

     따라서 이 둘의 조합을 내가 알 리가 없다는 판단이 쉬운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하는 기제를 심리학자들은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떤 대상이 친숙하기는 한데 실상 잘 모르는 것이라면?

    메타인지가 우리로 하여금 치명적인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순간이다.

     실제로 우리는 종종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어떤 대상을 접하거나 일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삐걱대고 어려움을 겪는 순간을 경험한다.

     도서관에서 자신있게 시험공부를 마치고 교실에서 시험지를 받자마자 텅 비어버린 것 같은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학생, 고장나 멈춰 선 자동차의 보닛을 자신있게 열어본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발견하곤 난감해 하는 운전자, 잘 알고 있는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그 계획의 중요한 세부사항들을 거의 모르고 있음을 느끼고 막막해 하는 경영자 등 수많은 사람이 `많이 봐서 친숙한 대상`에 대해 실제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음을 발견하고 난감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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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친숙함이 우리로 하여금 빠지게 하는 함정은 여기가 끝인가? 아니다.

     더 큰 함정을 만든다.

     왜냐하면 친숙함은 우리로 하여금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고 이는 다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친숙함이 주는 판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의 지도교수이자 `스마트 싱킹(Smart Thinking)`의 저자로 우리나라에도 꽤 익숙한 인물인 텍사스대학 심리학과의 아서 마크맨(Arthur B. Markman) 교수에게서 들은 말 중에 중요한 해답이 있다.
    바로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지식이 있다. 첫 번째는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지만 남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지식이다. 두 번째는 알고 있다는 느낌도 있고 남에게 설명도 할 수 있는 지식이다"라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후자만이 지식이다

    . 전자는 내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단순히 상대성 원리를 생각해 냈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그 원리를 설명까지 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이다.

    최고경영자(CEO)도 자신의 계획과 전략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에서부터 말단에 있는 부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들에게 직접 설명해봐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디를 어떻게 모르고 있고 따라서 어떤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수년 전 모 방송사와 함께 전국 최상위권 학생들이 평범한 학생들과 무엇이 다른가를 조사해본 적이 있다.

    지능지수, 부모의 학력 혹은 소득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유일한 차이점이자 그들 내의 공통점은 메타인지가 뛰어나다는 것이었으며 이 메타인지는 설명하기를 통해서만 상승한다.

     

     

    많은 점잖은 CEO들이 "말 안 해도 알지?"라고 하면서 자신의 의중을 폴로어들이 잘 알고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폴로어들도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된다. 의견을 모을 때는 자신의 입을 닫고 경청해야 하지만 자신의 전략은 최대한 친절하게 여러 대상에게 여러 번 설명해줘야 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 양쪽 모두를 위해서.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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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 심리학] `말하는 대로` 정말 이뤄질까
    기대만큼 결과 나올 때 더 인상깊게 기억하는 `자기충족적 예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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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다 보면 밉거나 싫은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달갑지 않은 일이나 사건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나 일들에 대해 우리는 일종의 미신과도 같은 규칙성을 믿고 있다. 이른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직장 상사나 얄미운 동료를 친한 주위 사람들과 험담할 때면 어김없이 그 당사자가 불쑥 나타나서 우리를 당황하게 한 경험이 누구나 몇 번쯤 있을 것이다. 또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주위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말린다. "그런 말 하지 마. 얘기하면 꼭 그 일이 일어나더라"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믿음은 정말로 사실일까?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믿음은 왜 우리 마음속 깊이 뿌리잡고 있어 심지어는 하나의 속담처럼 되어 있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충족적 예언` 현상으로 설명한다. 이는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대해 일종의 믿음이나 기대를 가지게 되면 그 대상이 그 믿음과 기대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경우에만 이를 기억하거나 인식한다`는 점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이를 마치 자신이 예언한 대로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실제로 우리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고 가정해보자. 비록 그 사람이 싫다고 해도 그가 늘 나에게 밉상인 행동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좋은 행동을 할 때가 있고 평범한 행동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일단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그가 하는 나쁜 행동만 유독 눈에 밟힌다. 그래서 흔히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그것 봐.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이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인간의 사고가 지닌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법. 이 현상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로 다시금 돌아와 보자. 내가 특정인을 만날 확률과 내가 대화 중에 그 특정인을 거론할 확률이 존재한다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마침 그 사람을 만날 확률도 일정하게 존재한다. 물론 이와 반대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는 경우나 그와 마주칠 때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은 전자의 경우에만 유독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추정되는 원인과 그 원인의 결과라고 생각되는 현상 사이에서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가 모두 존재하는 경우에만 유독 눈길을 주는 셈이 된다.
    그런데 원인과 결과 각각의 존재ㆍ부재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정보의 유형은 모두 네 가지(2×2)다. 어떤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때 이 네 가지 중 한 가지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고 그 한 가지를 미리 결정해 버리는 것은 내가 사전에 가진 기대나 관점이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이루어진다` 는 말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 것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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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을 살리고 죽이는 `리더의 화법 

     

    우리는 어떤 말을 할 때 `~하지 않다`란 표현을 참으로 많이 쓴다.

     그냥 반대의 의미인 `~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될 것을 굳이 부정적인 표현으로 돌려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에는 심리학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코자 하는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대가는 크다.

     부정적인 표현은 종종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조사전문가 도널드 러그(Donald Rugg)는 1940년대 `허락(allow)과 금지(forbid)의 차이`란 실험을 진행했다.

     러그는 조사 대상자에게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대중연설을 허락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니요`란 의견이 62%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 대중 연설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에 `예`란 의견은 46%로 줄었다.

     전자의 질문에 대한 `아니요`와 후자의 질문에 대한 `예` 모두 결국 금지한다는 의미는 똑같은데도 전혀 다른 결과가 관찰된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면 전자의 `허락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금지한다`는 후자의 의견보다 한발 더 물러나 있는, 즉 심리적 퇴로가 좀 더 넓은 표현이다.

     `허락하지 않는다`와 `금지` 모두 의미가 같은 것 같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후자가 강도가 더 세며 때론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쉽게 관찰된다.

    `임신중절을 금지해야 한다`란 질문지보다 `임신중절을 허용하면 안 된다`는 질문에서 `그렇다`는 반응을 더 많이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A란 말의 반대어라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B란 말이 `A가 아니다(is not A)`란 뜻이 아니란 의미다. `A가 아니다`란 식의 표현은 B까지 포함해 더 많은 경우의 수와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나요`란 질문에 `사랑하지 않는다`란 대답을 듣게 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나를 단순히 좋아하는 걸까` `관심이 없다는 걸까`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는 걸까`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게 된다.

    정확한 의사표현을 해야할 때는 되도록 부정적인 표현인 `~하지 않다`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영어로 치면 `not`의 남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를 전달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 사이에서 그 의미의 정도나 강도 면에서 괴리가 발생해 결국 다양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정어가 포함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어떨때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할까.

     바로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거나 책임을 덜 지고 싶을 때 이런 표현을 쓰게 된다.

     국정감사에서 질문 공세를 받는 공직자들이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대신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란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서다.

     

     

    만약 조직의 리더가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면?

    조직 구성원들이 해당 의미를 각기 다른 정도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불협화음과 소통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의 표현은 명확해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