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의 승부, 나와의 승부
착수, 선수, 미생과 같은 바둑 용어들이 인생의 주석이 된다. 지나온 길을 복기하는 기보나 그 기보의 해설이 인생과 연계된다. 판 하나로 압축된 삶이기에 갸륵하고 신기하다. 바둑의 한 수는 두고 나면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만화가 윤태호는 이렇게 말한다. 한 수, 한 수 매 번 선택을 강요당하는 바둑이야말로 인생 그 자체라고 말이다. 승패가 나뉘는 것을 두고 우리는 승부라 일컫는다. 애매모호한 결과는 없다. 무승부라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진 사람도 이긴 사람도 없이 끝났다는 의미다. `미생` 의 주인공은 사람들과의 만남 하나하나를 대국으로 여긴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과 나누는 대국이 곧 인생이 된다. 어쩌면 이게 바로 대국의 기본 수칙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판을 짜고 내가 선수를 두고 내가 마지막까지 책임져야 하는 곳에서는 내가 곧 상대가 된다. 이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질문을 던진 자가 나이니 대답을 아는 자도 나뿐이다. 내가 승부를 걸고 내가 성패를 결론짓는 세계, 세상엔 그런 승부도 있다. 아무리 그럴 듯해도 세상에서 겪게 될 선택이나 경우의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게임은 패배를 기회비용으로 요구하지만 영원한 패배는 또 없다. 하지만, 삶은 다르다. 세상사라는 게 대국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토너먼트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오디션의 규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대를 이기고 내가 먼저 승자의 자리에 오르면 되는 것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만 잘 불러도 되고, 춤을 잘 추는 사람은 춤만 열심히 연습하면 된다. 학교생활처럼 모든 과목의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교우관계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며, 회사생활을 할 때처럼 회식까지 참여해 인성을 검증받을 필요도 없다. 오디션은 경쟁과 승부라는 매우 간단한 규칙으로 이뤄진 게임과도 같다. 최소 규칙으로 운용되는 세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사회생활의 승부에는 고려해야 할 상황이 너무 많다. 게다가 시간이 곧 승부의 결과를 말해주지도 않는다. 나의 실패를 눈감는 순간 그 누구도 패배를 알 수 없는 세계, 소위 상대가 없는 게임에 임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삶은 가혹하고도 다정해서 답이 없는 질문을 곧잘 던진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에는 훌륭한 가수가 되는 것처럼 구체적 매뉴얼이 없다. 내가 써 놓은 글이 승인지 패인지 알 수 있는 길도 없다. 세상사의 평가가 있다지만 세상을 상대로 대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로는 자기 세계 안에서 스스로 승패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안의 승부에서 사람들은 자꾸만 변명을 찾고 핑계를 덧붙인다. 자신을 설득할 당위 하나쯤은 늘 갖춰두고 산다. 내 안의 싸움은 피하고 밖에 놓인 단순한 룰에 매달리는 것, 결국 인생이 승부라면 진짜 승부는 나 혼자만 아는 그곳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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