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한국의 미소` 보면 모나리자가 생각난다

길벗 道伴 2013. 9. 8. 22:00

`한국의 미소` 보면 모나리자가 생각난다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곧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세계의 관람객들과 만나게 된다. 보존상의 안전을 위해 한국에 머무르게 할지 외교와 홍보를 위해 뉴욕으로 잠시 떠나보낼지 한참 동안 고민했던 유물이다. 그러고 보니 보살은 본래부터 `머무를까 떠날까`를 망설이던 존재다. 스스로 깨달음을 열어 인간세계를 떠날 능력이 있음에도 단지 뭇사람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세상에 머물러 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먼저 배에 태워 이상세계에 도달하게 도와주는 뱃사공이 바로 보살인 셈이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볼에 댄 채로 생각에 잠긴 모습의 보살상을 가리킨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회의를 느끼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으며, 나중에는 보살을 표현하는 형식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유의 이미지는 우리나라에서는 6~7세기에 크게 유행했다. 그중에서도 이 반가사유상은 군더더기 없이 우아한 몸의 선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옷자락의 주름, 그리고 자애롭고 그윽한 표정으로 예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정신없고 고달픈지 전부 알고 있노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감은 두 눈으로는 타인의 허물을 일일이 끄집어내는 대신, 오직 마음으로 들려오는 소리만 들으려는 것 같다. 이 조각상 앞에 서면 자신이 믿는 종교와 관련 없이 마치 내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거울과 마주하는 기분에 젖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미소가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닮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앞에 섰을 때 호쾌한 에너지나 상큼한 유머로 가득 찬 미소도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쉽사리 돌아설 수 없었다. "당신을 이해합니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마음을 읽은 이와는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얼마 전에 종영한 인기 TV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지닌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왔었다. 변호사인 여주인공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린 소년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사람이든 작품이든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손을 살포시 턱에 댄 보살은 19세기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도 닮았다. 서양에서 이 자세는 `멜랑콜리`의 의미다. 자신의 창조적 역량이 기껏해야 남들과 똑같은 인간세계에 머물러 있을 뿐, 도무지 천상의 세계에 닿을 길이 없기에 우울한 것이 멜랑콜리한 감정의 원천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의 굴레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며, 동시에 오늘날을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 하나하나를 대표한다.
 


반가사유상이 서양인에게 유독 호소력 있는 이유는 마치 `생각하는 사람`과 `모나리자`의 융합인양 인간의 번뇌와 구원의 미소가 그 안에 절묘하게 함께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귀하고 소중한 우리 유물의 나들이이다. 이왕이면 더 많은 이와 마음을 나누고 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고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