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지금의 나를 넘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

길벗 道伴 2013. 10. 22. 09:21

지금의 나를 넘어야 최고가 될 수 있다

필자 : 한혜진 / 월간[CEO&] 2013.10 호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하지만 한평생을 살면서 세상에 자기 이름 석 자를 남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시대를 풍미하며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박찬호가 야구 선수로서의 타이틀을 뒤로하고 인간 박찬호의 이름으로 두 번째 마운드에 새롭게 오른다. Editor 한혜진 / Photographer 김수홍

박찬호

 

최근 근황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야구 선수를 은퇴하고 일반인으로 살고 있다. 19년 동안 생활이었던 야구를 그만두게 되니 몸도 많이 가늘어지고 성격도 순해진 것 같다. 서운한 마음과 함께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아 살짝 흥분 상태다. “야구 관련 일을 한다”는 대명제는 확실히 세웠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 중이다.

 

전시회도 그 일환인가?


그렇다. 올해 초 아트 컨설팅에 관한 프로그램을 수강하면서 예술계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됐다. 프로그램이 끝나갈 즈음 서울미술관 관장님을 소개받게 되었고, ‘야구’와 ‘예술’을 접목한 전시회를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사실 음악, 문학, 미술, 춤 같은 분야는 ‘예술’의 카테고리 안에서 융합이 자유롭지 않은가. 야구도 스포츠이자 예술의 한 분야로 생각하면 어떤 분야와의 콜래보레이션도 가능할 것 같았다.


모두 8명의 작가와 작업을 했다. 힘든점은 없었나?


작가 섭외는 미술관 측이 직접 의뢰했다. 나는 현업 작가들과 친분을 쌓을 기회가 많이 없었으니까. 미술관 측에서 각 분야 별로 명망 있는, 나와의 작업을 멋지게 완성해 줄 작가들을 섭외했고, 나는 작가를 직접 만나 스토리를 구상하고 작품의 방향을 잡아 나갔다. 특히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고 자란 ‘이현세 키드’다.

 

개인적으로 ‘신화의 탄생(김태은 作)’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번 전시의 모든 작품은 온전히 ‘박찬호’에 대한 이야기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 없듯, 전부 내 자식같이 애틋하고 감동적이다. 관람객은 호불호를 가질 수 있지만, 나는 어느 한 작품이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술에 대한 전문성이 없어서인지, 다 내 새끼 같아서인지 모두 훌륭하고 아름답다. 게다가 ‘박찬호’라는, 나에 대한 작품이니 정말 영광스럽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굉장한 야구 팬이다. 한화 이글스 팬은 아니지만, 야구 선수로서의 박찬호가 많이 아쉽다. 아직 한국에서 보여줄 것이 많을 것 같은데.


나도 많이 아쉽다. 사실 1~2년 정도는 더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자신도 있다. 하지만 구단의 사정도 있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내 욕심보다는 야구계, 구단의 상황을 먼저 고려해야 했다. 나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누구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물러나야 한다는 건데, 개인적으로나 대외적으로 그 자리를 보존해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을 수 있다. 조용필은 아직까지도 최고의 가수가 아닌가. 한때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그다음이 내리막길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최고에게는 장르를 바꾸든 협업을 하든 관련 분야에서 그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한다. 물론 나는 최고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얼마 전 자서전을 썼다.


19년 동안의 ‘야구선수 박찬호’를 정리하는 기록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담담히 돌아보고 싶었다. 아직 성공을 말하기엔 이르지만 인생의 1막을 정리하는 기분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 운명 같은 계기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됐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현재 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야구계 선후배들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들 중에서 내가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기보다는 가장 잘 적응했던 선수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리그든 메이저리그든 더 넓은 무대에 진출하고 성공하는 선수가 많아지길 바란다. 앞으로 계속 전세계 야구 발전의 한 축이 되길 바란다. 그런 맥락에서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전시회의 수익금을 베트남 어린이 심장병 치료에 쓴다고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사정이 어려운 소외계층이 많지 않은가.


우연한 계기에 베트남 어린이 후원회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이 심장수술 분야에서 최고라는 부천의 세종병원과 연이 닿았다. 물론 우리나라 어린이들을 돕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건 알지만, 내가 미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다양한 인종,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얻은 명성과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굳이 국적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이번 전시회는 베트남 어린이에게 혜택을 주었지만, 다음 번에는 제주도 어린이들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World Peace’를 생각하자.

 

전시회가 끝나면 야구와 관련해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서두에 얘기했지만, 아직 생각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유소년 야구 교실이나 ‘박찬호 재단’ 같은 장학 활동은 꾸준히 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시회를 한다든지, 야구와 관련된 다른 작업들은 혼자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러 기획과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야구인이고, 야구에 관련된 일을 할거라는 큰 틀은 지켜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