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열기 뜨거운 서해안벨트 / (3) 나는 투자 기는 인프라◆
지난달 27일부터 충남 당진군 송악면 신성 미소지움 아파트 입주가 시작됐다.
1100가구가 넘는 대단위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미입주 가구 하나 없이 전 가구가 입주하고 있다.
미분양ㆍ미입주 물량이 쌓이고 있는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모습이다.
이는 현대제철의 한보철강 인수를 계기로 살아나고 있는 당진 경제 때문이다.
이 단지는 현대제철, 당진항, 송악IC와 가까워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입주자들에게는 요즘 고민이 하나 생겼다.
아이들 학교 문제 때문이다.
단지와 가까운 곳에 학교가 없고 좀 떨어진 학교에 보내려 하자니 대형 트럭 통행량이 많은 도로를 지나가야 한다.
당진군 교육청에는 이곳에 학교를 신설해 달라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 교육ㆍ문화 인프라 확충 시급 = 서해안벨트를 중심으로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인프라 투자는 지체되고 있어 `서해안벨트 질주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주말 할인마트에 가려면 차를 타고 30분 거리인 서산까지 가야 해요. 시간이 더 걸려도 다양한 선택 폭이 있는 천안으로 가기도 하죠."(당진군 주부 이선화 씨)
"배가 아파 지역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이라며 마취 의사가 있는 곳으로 가라고 해서 서울까지 급히 후송됐어요. 그런데 서울 병원에선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하네요."(현대제철 한 임직원)
3.5일에 1개꼴로 기업들이 들어오고 있지만 병원이나 쇼핑센터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들이 들어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족이 함께 내려오는 경우보다 가족은 서울에 남겨 두고 혼자 내려오는 국내판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
이곳에서는 이들을 `당진총각` `서산총각` `대산총각`이라고 부른다.
가장 큰 고민이 교육 문제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자녀가 중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며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하는 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대산단지 입주업체 임직원들은 대부분 대산읍에서 차로 20분 이상 떨어진 서산에 거주한다.
역시 자녀 교육환경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 주거단지 건설시 자체적으로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만드는 것을 검토 중이다.
당진ㆍ대산 지역은 또 호황에 힘입어 러브호텔, 모텔은 난립하고 있지만 호텔급 숙박시설은 전무한 상태다.
삼성토탈은 대산 단지로 외국 손님이 오면 30분 거리인 서산시에 있는 모텔로 안내한다.
당진 소재 철강회사들은 서해대교 인근 송악면에 소재한 러브호텔에 해외 바이어들의 숙소를 잡아 주고 있다.
◆ 교통ㆍ물류 인프라도 포화상태 = 지난해 말 개항한 대산항 국가부두는 이용 실적이 극히 저조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주변 도로 인프라스트럭처가 열악한 것이 주요 이유로 지적된다.
현지 철강업체 관계자는 "대산항을 이용해 화물을 수출하려다 38번 국도가 골목길 수준으로 좁아 대형 화물차가 운행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삼성토탈 관계자는 "서해안고속도로 송악IC에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보면 철강 단지를 지나서는 국도가 2차선으로 바뀐다"며 "최근 통행량이 급격히 늘고 있지만 10년째 좁은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니 교통사고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대산석유화학단지 입주 업체들은 기존 민자부두에서 처리가 어려운 고체류 수출에 애로를 겪고 있다.
입주 업체 관계자는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은 포장해서 컨테이너로 수출해야 한다"며 "대산항을 이용하면 물류비를 훨씬 줄일 수 있지만 관련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부산, 인천, 평택항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해안벨트 부상의 촉매제가 됐던 서해안고속도로도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 지역통합적 관리 필요 = 송악IC에서 나와 38번 국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주민 무시하는 OO제강은 물러나라`는 수십 장의 플래카드다.
당진군 송악면에 투자 중인 이 철강업체가 사원아파트 200가구를 송악면이 아닌 인근 송산면에 짓겠다고 하자 시작된 송악면 주민들의 집단 반발이다.
이 회사는 지난 2월과 3월에 걸쳐 각각 주택건설 사업계획 변경 신청과 토지거래허가 신청을 당진군에 냈지만 지난달 말 최종 반려됐다.
송악면 주민의 반발을 이기지 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당진과 서산, 천안과 아산 등 이 지역은 거의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돼 가고 있지만 뿌리 깊은 `소지역주의`가 체계적인 투자를 막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제철 직원들은 당진군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말조심을 한다.
한 직원은 "무의식적으로 `평택항`이라고 부르면 군청 직원의 표정이 바뀐다"며 "반드시 `당진ㆍ평택항`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ㆍ아산역을 놓고 한 번 격돌했던 천안시와 아산시 지역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천안시, 아산시 모두 언젠가는 두 지역이 하나의 행정단위로 통일돼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서로 협력해서 큰 그림을 그려 나가기보다는 통합 후 주도권에 더 큰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 박용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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