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한옥에서 떠올린 혁신의 비결

길벗 道伴 2013. 10. 28. 14:59

[김인수 기자의 사람이니까 경영이다] 한옥에서 떠올린 혁신의 비결
기사입력 2013.10.28 10:00:30 | 최종수정 2013.10.28 10:02:51

필자의 직장은 서울 남산 한옥마을과 매우 가깝다.

 그러다 보니 가끔 한옥마을에 산책 겸 들르곤 한다.

휴일 근무를 했던 지난 27일에도 그랬다. 한옥 구조를 보고 있으려니, 서양식 주택과는 기본 철학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식 주택과 달리 한옥에서 각 공간은 기능이 매우 유연하다.

 한옥에서 안방은 침실이자, 거실이며, 다이닝 룸이다.

이불을 깔면 잠을 자는 침실이 된다.

식탁을 놓으면 함께 밥을 먹는 다이닝 룸이 된다.

식탁을 치우면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거실이 된다.

반면 아파트 등 서양식 주택은 거실, 침실, 다이닝 룸 등으로 공간마다 기능이 고정돼 있다.

한옥마을의 한옥을 보니까 분명했다.

우리 선조들은 한 가지 공간 또는 물건을 다양한 용도로 쓰는데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한옥의 공간 구조에서 보이는 이런 유연한 사고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자원을 고정된 한 가지 기능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두 가지의 매우 단순하지만 놀라운 사례가 있다.

 이는 제이콥 골든버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자신의 책 `인사이드 더 박스`(Inside the box)에서 소개한 것들이다.

첫 번째 예다.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서울의 한 호텔을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였다.

리셉션 데스크의 직원이 그에게 "환영합니다. 선생님. 다시 뵙게 돼 기쁩니다."(Welcome sir! How nice to see you again!)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내가 두 번째 방문인 줄 알았을까.` 이 경영자는 한국의 호텔 서비스에게 감동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경영자는 부하 직원을 불러 서울에서의 경험을 얘기해주었다. 그리고는 뉴욕 호텔에서도 똑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한참을 지난 뒤 부하 직원은 경영자에게 돌아와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고객의 얼굴을 인식해 재방문 여부를 알려주는 `얼굴 인식 카메라` 설치에는 250만 달러가 든다고 했다.

이 경영자는 궁금해졌다.

한국의 호텔도 얼굴 인식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고객이 처음 방문인지, 재차 방문인지를 어떻게 파악하는 것일까?

경영자가 다시 서울에 왔을 때 이 호텔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리셉션 데스크의 직원에게 비결을 물어보았다.

그는 다시 한번 놀라야 했다.

비결이 너무 단순했으며 비용도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택시 운전사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택시 운전사는 공항에서 태운 손님에게 물어봅니다.

저희 호텔 방문이 처음인지 아닌지를요. 만약 처음이라면 택시 운전사는 손님의 짐을 호텔 데스크의 오른 쪽에, 2회 이상 방문이라면 데스크의 왼쪽에 둡니다.

 덕분에 우리는 고객님이 저희 호텔을 처음 방문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운전사에게 대가로 1달러를 지급합니다."

일반적으로 택시 운전사는 고객에게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의 이 호텔은 택시 운전사를 운송 서비스 제공자로만 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객의 호텔 방문 횟수 파악`이라는 추가 기능을 맡길 수 있었다.

이 호텔은 이처럼 대상을 한 가지 고정적인 기능으로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에 250만 달러가 들 서비스를 푼돈으로 해치울 수 있었다.

두 번째 예는 더욱 놀랍다.

 너무나 저렴한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1930년대 스페인 내란 때 있었던 일이다.

정부군이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 근처의 조그마한 언덕에 갇혀 파시스트 반란군에 포위돼 있었다.

식량 등 생필품을 공수 받아 버텨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군에 낙하산이 부족해졌다.

더 이상 낙하산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가 없게 됐다.

 굶어 죽느냐, 아니면 항복하느냐의 갈림길에 선 것 같았다.

이 때 나온 아이디어가 칠면조였다.

정부군 공군은 칠면조에 생필품을 매달아 지상으로 던졌다.

 칠면조의 날갯짓 덕분엔 생필품이 하강하는 속도가 느려졌고,

 지상의 정부군은 안전하게 생필품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정부군은 칠면조를 `식량`이라는 고정된 기능으로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칠면조에 `낙하산`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붙였다.

혁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을 잘만 활용해도 얼마든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가 있다.

 때로는 기존 자원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덕분에 서울의 한 호텔은 푼돈으로 고객 감동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고, 스페인 정부군은 목숨을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