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조직을 위기로 내모는 `의사결정 실패` 5단계

길벗 道伴 2013. 10. 12. 21:35
*. 조직을 위기로 내모는 `의사결정 실패` 5단계
차세대 전투기사업·세제개편으로 본 한국의 의사결정 위기

 

# 방위사업청은 지난 9월 24일 차기 전투기(F-X)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2007년 F-X 도입을 결정한 지 무려 6년이 지나서였다. 입찰 결과 8조3000억원의 예산 상한을 맞춘 기종은 F-X라고 부르기 힘든 F-15SE뿐이었다. 2011년 국회마저 1조8000억원이 부족하다고 했던 예산 상한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8일 연소득 3450만원 이상 직장인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내용의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7개월에 걸친 고민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산층 증세라는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발표 나흘 만에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 사회는 의사 결정의 위기를 겪고 있다. F-X사업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이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웅진그룹은 몸집을 무리하게 키우다 공중분해됐다. STX의 위기는 중국 다롄조선소에 대한 무리한 투자 결정 탓이 크다.

전문가들은 의사 결정이 난맥상을 빚는 까닭에 대해 "한국 사회 특유의 엄격한 위계질서 때문에 나쁜 소식ㆍ정보는 조직 내에 흐르지 않는다는 점, 이 때문에 리더들이 정보의 진공 상태인 최고경영자(CEO) 병에 빠지는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 1단계 : 보스 불편하게 하는 정보는 차단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 추락해 225명이 사망했다. 경영 구루 맬컴 글래드웰은 "기장이 줄곧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부기장이 눈치챘지만 명시적으로 잘못을 지적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위계질서 탓에 상사에게 나쁜 정보를 알리지 못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사고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괌 참사 증후군`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보스를 불편하게 할 만한 `나쁜 정보ㆍ소식`은 입에 올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애써 무시한다. 그 결과 조직에는 `좋은 소식`만 과잉으로 흐르고 `나쁜 소식`은 흐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제 개편안이 중산층 증세라는 부분은 사전 당정협의 과정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F-15SE는 스텔스 기능이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마저 애써 무시됐다.

◆ 2단계 : 눈과 귀 막힌 CEO 판단력 떨어져

조직에 나쁜 정보가 흐르지 않으면 리더는 듣기 좋은 정보만 접하게 된다. 결국 정보의 진공 상태에 빠진다. 이런 리더를 꼬집어 대니얼 골먼 박사는 "CEO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잭 웰치 전 GE CEO는 이 병을 경계한 대표적인 예다. 그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CEO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CEO병과 무관하지 않다. 세제 개편안 발표 나흘 만에 "서민을 위한 정책 방향과 어긋난다"고 밝혔다는 게 증거다. 이를 근거로 한 컨설팅 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세제 개편안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정보의 진공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며 "CEO병의 증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 3단계 : 문제는 외면…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리더와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에 부합되는 증거만 수집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를 일컬어 프랑수아 만조니 인시아드 교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제 개편안 발표 후에 경제팀이 보인 태도는 확증 편향에 가깝다. 여당의 수정 요구에 대해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은 "뭐가 문제냐"고 항변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거위 깃털을 고통 없이 뽑는 것과 같은 창의적인 세제 개편안"이라고 말했다. 세제 개편안의 단점은 애써 무시하고 장점만 보려는 이 같은 태도는 확증 편향의 증상이다. 방위사업청 역시 F-15SE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적극 거론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4단계 : 우선 순위 바꾸며 자기합리화

리더와 조직은 확증 편향에 빠져들면서 `우리가 옳다`는 확신을 굳히지만 외부 환경은 정반대로 흐른다. 뒤늦게 외부 반발에 당황하는 순간이 온다. 의사 결정을 정당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보이는 증상이 우선순위의 혼란이다.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를 바꿔 의사 결정 자체를 합리화하려는 시도다.

군은 F-X사업 시작 당시에는 목표를 `스텔스기 확보`라고 밝혔다. 그러나 F-15SE의 스텔스 기능이 문제가 되자 `전력 공백 최소화`로 우선순위를 바꾸는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 F-15SE 도입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F-15SE가 부결될 때는 `5세대 전투기 확보`를 우선순위로 내세웠다.

◆ 5단계 : 판단 실수와 오류의 반복ㆍ악순환

의사 결정의 실패는 반복된다. 증세 논란은 한국 사회에 잠재된 폭탄이기에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F-X사업의 기종 선정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폴 J H 슈메이커 맥기술혁신센터 리서치 디렉터는 "(의사 결정의 반복적인 실패를 피하려면) 인간은 언제나 실수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수로부터 통찰과 배움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의사결정 잘 내리고 싶죠? 5가지 팁 알려드립니다
제발 눈을 뜨세요…나쁜 정보엔 눈 감으니 좋은 의사결정 못하는 거죠

 

노보노르디스크(Novo Nordisk)는 전 세계 인슐린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덴마크 제약회사다. 잘나가던 이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올해 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수출에 제동이 걸릴 뻔했다. 이 회사의 덴마크 공장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규정을 어긴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위기를 잘 넘겼지만, 내부에선 이런 내용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CEO는 이 회사에서 가장 늦게 뉴스를 접한 사람이었다. 노보노르디스크는 의사결정의 실패 5단계 가운데 적어도 1~3단계를 겪었다. FDA 규정 위반과 같은 `나쁜 정보`가 흐르지 않는 괌참사 증후군이 재현됐다. 리더는 정보의 진공 상태에 빠졌다. 불리한 정보보다는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확증 편향도 나타났다. 그 결과로 미국 수출 길이 거의 막힐 뻔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다행히 CEO의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유턴`에 성공했다. 조직 내 대수술을 감행하고, 그동안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쳤다. 덕분에 5단계인 `의사결정 실패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F-X사업 등 국가적 중대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한국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배워야 할 대목이다.

◆ 나쁜 정보 흘러야

노보노르디스크는 새로운 `조직 소통 프로세스`를 가동했다. 회사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중요 사안을 실무진들이 쉬쉬하며 CEO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은 사내 커뮤니케이션과 소통의 문제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오늘날 노보노르디스크에서는 조직 전문가들이 정기적ㆍ비정기적으로 전 세계 계열사들을 방문한다. 무작위로 직원들을 인터뷰한다. 나쁜 정보를 포함해 모든 정보가 잘 흐르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만약 나쁜 소식이 이해 관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경우 `경보 프로세스`를 가동하고, 사내 인트라넷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랍 거피 런던 경영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소통 프로세스 덕분에 노보노르디스크는 정보의 흐름이 억압되지 않는 가장 모범적인 직장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 회사는 최소한 괌참사 증후군과 CEO병에서는 확실히 벗어난 것이다.

 

◆ 집단사고 벗어라

미국은 1959년 쿠바에 카스트로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이를 붕괴시킬 계획을 세웠다.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은 군사ㆍ안보 전문가들과의 회의를 거쳐 1961년 `피그스만 상륙 작전`을 감행한다. 미국으로 망명온 쿠바인 3000명을 피그스만에 상륙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자는 계획이었다. 언뜻 봐도 무모해 보이는 이 계획은 놀랍게도 반대 없이 통과됐다. 미국은 사흘 만에 100명의 사상자를 내고 1000명을 포로로 내주었다.

피그스만 작전은 `집단사고`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동질적인 군사ㆍ안보 전문가 집단만 참여한 회의에서 의견의 일치만 추구하고 비판을 배제한 탓에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실패한 것이다. 집단사고에 빠질수록 `의사결정의 실패 1~5단계`를 겪을 확률이 높아진다.

쓰디쓴 실패를 맛본 케네디 대통령은 회의 체제를 바꿨다. 군사 전문가들 외에 정치인들과 비전문가들까지 회의에 참여시켰다. 이질적인 두 집단을 함께 묶어 해법을 모색한 것이다. 일사천리로 반대 없이 흘러가던 회의는 순식간에 치열한 토론의 장으로 변했다. 덕분에 집단사고에 빠질 위험도 없어졌다. 이는 이듬해 미국과 소련 간의 제3차 세계대전 위기를 해소하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다. 소련이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해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은 전과 달리 협상을 통해 무력 충돌 없이 문제를 해결했다.

◆ `악마 대변인` 둬라

일부러 반대 주장을 취하며 `딴지`를 거는 사람을 조직에 구비하는 것도 필수다.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조직에 두라는 뜻이다.

GE의 전설적인 CEO로 꼽히는 잭 웰치 역시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거쳤다. 레지널드 존스 당시 GE CEO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인 반면 웰치는 다소 무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거침없는 논쟁을 좋아했다.

존스는 자신과 정반대 성격의 웰치를 악마의 대변인으로 활용했다. 이후 웰치는 GE의 차기 CEO 자리까지 꿰찼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악마의 대변인으로 " `부사장` 또는 `부회장`과 같이 `부`자가 붙은 사람들이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참모진에게 악마의 대변인 역할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라며 " `부`자 자리에는 CEO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 혹은 CEO보다 더 경험 많고 나이 많은 사람을 앉히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 `프리모텀 테스트`

불리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찾아내는 것도 잘못된 의사결정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데버러 미첼 와튼스쿨 교수 등은 프로젝트 등이 이미 실패했다고 가정하고 그 원인을 찾는 `예기적 사후 가정`이 의사결정의 성공 확률을 30% 이상 끌어올린다고 진단했다.

이에 바탕해 세계적인 인지과학자인 게리 클라인 박사는 `프리모텀(Premortem) 테스트`를 고안했다. `우리는 A에 실패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왜 실패했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이 테스트는 리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조직원들이 함께해야 효과를 발휘한다. 모든 팀원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듯 답을 작성한다. 리더는 팀원마다 답을 읽게 한 후 기록한다. 팀원들은 `우리가 지금 하려는 프로젝트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들도 프리모텀 테스트에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이미 실패했다`는 가정 덕분이다. 리더는 팀원들이 낸 답을 활용해 프로젝트를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 매몰비용 잊어라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도 잘못된 의사결정을 부르는 주된 요소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매몰비용(Sunk Cost) 효과란 `지금까지 들인 공이 얼마인데`라고 생각하며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차기 전투기(F-X) 사업도 6년 동안 질질 끌면서 발생한 매몰비용이 아까워 의사결정이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다. 2011년 국회에서 1조8000억원의 예산 부족을 지적했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예산 상한선을 올리는 시도를 하는 게 옳았다는 지적이다.

국회 관계자는 "조기에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시도를 했다면 전력 공백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전투기 사업, 우선순위에 대한 공감대 부족했다

 

신철균 IGM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차기 전투기(F-X)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린다고 발표했다. 기종 선정에 끝내 실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철균 IGM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은 "F-X 사업은 초기부터 우선순위에 대한 공감대가 부재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했다. 그는 "스텔스 기능, 예산, 전력 공백 등 고려조건이 너무 다양한 데다 전문가별로 중시 여기는 조건과 이에 부여하는 가중치가 모두 달랐을 것"이라며 "이러다보니 우선순위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의사결정이 성공하려면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필수다. 의사결정 결과에 주인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일방적인 의사결정은 책임감까지 없앨 수 있다.

우선순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신 부원장은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와 2×2 매트릭스 2가지를 제시했다.

AHP는 토머스 사티 피츠버그대 교수가 개발한 방법으로 미국 항공우주국 등이 활용하면서 유명해진 기법이다. 우선 고려해야 할 조건들의 순위를 1~10위로 정한다. 이후 1위 조건을 2~9위 조건과 하나하나씩 비교해보는 식으로 모두 점수를 매긴 뒤 계산 과정을 거치면 조건별 중요도를 명확하게 도출해낼 수 있다.

 

2×2 매트릭스 기법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자주 활용했던 방법이다. 쫓겨났던 잡스가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1997년 당시 애플은 파산 위기였다. 잡스는 사용자가 누구냐, 휴대가 가능하냐를 기준으로 2×2 매트릭스를 그렸다. 이를 통해 40개에 달하는 애플 제품군을 4개로 단순화했다. 4개 제품에 집중한 애플은 파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F-X 사업에서도 중요한 2가지 조건인 스텔스 기능과 예산을 각각 x축과 y축에 놓은 다음, F35와 F-15SE, 유로파이터 등 3개 기종의 위치를 점으로 찍어볼 수 있다. 신 부원장은 "2×2 매트릭스 기법은 단순하지만 사람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은 이번 F-X사업에서 F-15SE를 후보 기종으로 단독 상정하면서 의사결정 과정을 마무리했지만 결국 채택되지 못하는 좌절을 맛봤다. 신철균 부원장은 "의사결정 과정이 마무리된 상태라도 끝없이 복기해 실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 육군은 작전과 의사결정의 실패 사례를 자산화하기 위해 AAR(After action reviewㆍ사후행동평가)를 고안해냈다. 현재 다양한 기업들이 AAR를 직원 교육과 프로젝트 평가 등에 활용하고 있다.

AAR는 단순하다. 우선 초기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 뒤 현실에서 얻어낸 결과와 비교해본다. 이후 이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무엇인지 서로 토의한다. 그리고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석한 뒤 직접 실험해 본다. 이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