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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기요미즈데라(淸水寺.청수사)를 올랐다.
이곳에서 교토 시내를 내려다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교토를 방문한 게 이번까지 다섯번째. 그 어느 외국 도시도 이렇게 자주 찾은 적이 없었다.
그 중 네 차례는 휴가였고, 이번만 비즈니스 여행이었다.
필자가 2000년 7월 처음 교토를 방문한 것은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사전 정보 없이 교토를 찾아왔다.
교토가 옛 일본의 서울이었다는 사실이 당시 필자가 알았던 전부였다.
당시에는 필자가 참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교토를 방문지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필자는 부서의 막내였다.
고참 순으로 여름 휴가 날짜를 정했다. 부장부터 맏고참까지 휴가 일정을 정하고 난 뒤 비어 있는 날짜는 바로 다음 주였다.
휴가 개시일까지 겨우 사나흘이 남았다. 게다가 일기예보를 보니, 태풍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렇다고 1년에 한번뿐인 휴가를 집에서 보내자니 너무나 억울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교토&나라 자유여행 3박4일’ 여행 상품이 있었다. `할 수 없다.
여기라도 가자`고 결정했다. (국내여행도 대안이었지만, 전년의 아픈 기억으로 포기했다. 제주도 휴가지에서 회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일을 해야 했던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도 혼나지 않을 해외여행을 1순위에 올렸다.)
속옷 몇 개가 든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교토역에 내렸을 때는 `그냥 깨끗한 도시구나`했다.
지도를 보니 역 근처에 절이 2개 있었다. `니시혼간지`와 `히가시혼간지`였다.
그저 호기심에 잠깐 들렀다. (한때 불교신자였던 필자는 대학시절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고 전국의 유명한 사찰을 찾아 다녔을 정도로 불교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니시혼간지에서 첫 느낌은 `어, 이게 뭔가`였다. 어렴풋이 필자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느낌의 정체는 이튿날 오전에 더욱 분명해졌다.
오전 일찍 교토역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만에 도착한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삼십삼간당)에서였다.
1000여 개의 천수 관음상 앞에서 온몸이 얼어붙었다.
한 동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평생 봤던 불교 예술 중 최고였다.
관음상의 표정과 손 끝 하나에 깃들어 있는 조각가의 정신은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너 우연히 찾아온 한 방문객의 머리에 천둥번개를 때렸다.
`일본에 이렇게 위대한 불교 예술이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내가 정말 일본에 대해 무지했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삼십삼간당 외부 모습
기요미즈데라, 뵤도인(平等院), 난센지(南禪寺), 료안지(龍安寺), 호류지(法隆寺.법륭사), 도다이지(東大寺.동대사) 등등.
몇 개의 돌이 불규칙하게 올려진 흰 모래 정원 앞에서는 명상에 빠져들었다.
섬세함과 정교함이 먼저 보이면 규모감과 위대함이 뒤따라왔고, 위압적인 규모감이 먼저 보이면 세밀함이 뒤이어 펼쳐졌다.
일본이 우리 선조로부터 불교를 배웠다고 하지만, 그저 배우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한때 스승이었다는 한반도에 남겨진 불교 예술 못지 않게 위대하며,
때로는 더 화려하기까지 한 예술을 창조했다.
어떤 한국인들은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렸다는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예로 들어 우리 선조들이 일본에 끼친 영향을 강조한다.
그러나 금당벽화는 위대한 예술품이기는 하지만, 옛 일본인들이 창조한 거대한 예술(호류지)의 한 부분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만약 2000년 7월 필자에게 미리 휴가지를 계획해서 고를 여유가 있었다면 교토에 갔을까 하고.
아무래도 안 갔을 것 같다. 필자는 당시 일본의 옛 불교 예술을 고대 한국에서 배워간 아류 정도로 착각하는 심각한 무지에 빠져 있었다. `우연`과 `계획 없음`이 필자를 그 같은 무지에서 구해낸 것이다.
이때부터 필자는 여행을 갈 때 미리 철저히 계획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단지 큰 틀에서 여행지를 정할 뿐, 현장에서 무엇을 할지는 열차 안에서 또는 전날 호텔에서 정한다. 그것도 대충 정한다.
그리고는 뜻하지 않는 우연에 몸을 맡기곤 한다.
그래야만 교토에서처럼 계획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 필자의 편견과 무지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 역시 결혼 뒤에는 아내에게 혼이 나면서 좀 더 자세하게 여행 계획을 짜게 됐다.)
어떤 이들은 여행 중의 우연에 몸을 맡기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내기도 한다.
하워드 슐츠의 스타벅스 창업이 대표적인 예다.
슐츠는 1983년 이탈리아 밀라노를 여행하게 된다.
주방용품 박람회에서 가정용 커피 기기의 트렌드를 살펴보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박람회장에 가는 도중에 우연히 에스프레소 바가 눈에 띄었다.
바에서 커피를 마신 슐츠의 머리속에는 스타벅스 창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슐츠는 잇달아 다른 에스프레소 바를 방문해 자신의 창업 아이디어를 점검했다.
만약 슐츠가 당초 계획대로만 밀라노를 여행했다면 오늘날의 스타벅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씩 해외 여행을 할 때면 한국인 관광객들이 `붕어빵 경험`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을 가면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모나리자` 앞에 모여 있다.
이들은 한국어 여행 안내서나 여행사 측에서 추천한 몇몇 작품만 보고는 미술관을 떠난다.
그러다 보니, 루브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은 똑 같은 작품만 아주 짧게 체험하는 `붕어빵 경험`을 얻고 간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짧은 순간이라도 여행 중에 `우연`과 `무계획`에 몸을 맡겨보는 게 어떨까.
당신이 만난 예기치 않은 체험은 새로운 깨달음과 아이디어의 원천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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