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기대는 삶, 필연을 만드는 삶
우리가 `막장`이라 부르는 드라마에는 삼각 또는 사각 관계나 출생의 비밀 등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등장인물 간 인연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여러 겹 중첩되어 있다.
남자 주인공은 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어머니 친구의 딸이다. 남자 주인공 동생도
어느 여자와 사귀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어머니의 또 다른 친구의 동생이다. 또한 남자 주인공은 어머니의 이미 고인이 된 한 친구가 바로 자신을
낳아 준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이와 같이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황당한 우연이 줄줄이 설정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막장 드라마`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설정은 영화보다는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시간 분량이 많은데도 등장하는
인물 수는 제한되어 있어 황당한 설정을 통해서라도 줄거리를 좀 더 길고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혀 뜻하지 않은 장소나
시간에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세상 참 좁다"고 말한다.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정말 좁은 세상에서는 뜻밖에 누군가를 만나도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부와 고립되어 있는 손바닥만 한 동네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자주 부딪치다 보니 여러 가지 인연들로 얽힐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 자주 발견되는 우연처럼 보이는 복잡하게 얽힌 인물들 간 중첩된 인연은 어쩌면 한국이라는 사회가 매우 고립되어 있고 좁은
세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상영된 영화 `첨밀밀`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 영화로
선정되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남녀 주인공은 중국에서 홍콩으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인데, 영화 속에서 세 번씩이나 우연히 서로 만난다. 둘은
어느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처음 만났고, 처지가 비슷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연민을 느껴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둘은 이별하게 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후 미국 뉴욕에서 마침내 재회한다. 이 영화의 최고 반전은 영화 맨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이들이
처음 홍콩행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기차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등을 맞댄 앞뒤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만남은 운명 또는 인연이었던가? 아니면 그저 우연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기차 안에서 첫 번째 만남은 그들에게는 마치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과 옷깃을 스치는 것과 같이 매일 일어나는 우연, 즉 준비되지 않은 만남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남은 직장이라는 좀 더 작은 세상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작은 인연은 더 큰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별 후
그들의 재회는 미국 뉴욕 어느 길거리에서 일어난다. 사람들로 붐비는 뉴욕 거리에서 세 번째로 만난 것은 어쩌면 바닷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그만큼 절실히 서로를 그리워했기 때문이다. 즉 세 번째 만남은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공학이나 경제학에서는 수식(數式)을 만들어 컴퓨터로 확률을 계산하여 그 일이 우연인지
아닌지를 가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드라마나 문학작품에서 우연과 필연을 구분 짓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등장인물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직장의 여러 이성 중에 왜 하필 그 남자 또는 그녀여야만 하는지, 다양한 여러 질병 중에서 왜 꼭 그 병에 걸려야만 하는지 등을 따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을 우연이 아닌 필연적으로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매일 내리는 수많은 결정이 최선인지, 즉 다른 대안들보다
더 타당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이 남긴 그의 마지막 악보에는 이런 문구가 마치 유언처럼 적혀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김혜원 동아시아문화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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