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

책상과 현장

길벗 道伴 2013. 10. 21. 08:49

책상과 현장
기사입력 2013.10.20 18:37:31 | 최종수정 2013.10.20 21:37:46

바야흐로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등불을 밝혀 두고 책 읽기 좋은 등화가친의 계절이 왔다.

우리가 어릴 때는 앉은뱅이 책상에서 공부를 했고, 밥상에서도 책을 읽었다. 중국 시인 두보는 `남아수독 오거서(男兒須讀 五車書)`라며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읽어야 할 책을 다섯 수레에 가득 찰 분량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자칫 책만 읽고 책에 나오는 이야기만 하면 탁상공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필자가 공직에 근무할 때 국민으로부터 받은 가장 따끔한 지적은 공직자들이 탁상행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현실과 현장을 알지 못하면서 현실의 문제들을 풀기 위해 기획을 하고 관련 법령을 입안한다는 것이다. 밤잠도 안자고 주말도 반납한 채 열심히 일하나 그 성과는 잘 나타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정책, 그 법령, 시행규칙들이 이미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는 방향을 잘못 잡고 열심히 뛰고 있는 어리석은 다람쥐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30년 공직기간 중 10년의 기간을 지방의 일선 현장에서 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1996년 막 태동한 중소기업청의 지방관서 책임자로 발령받아 내려가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 생각에 빠져들었다. 여태까지는 중앙부처에서 소위 기획업무를 한다고 부처 간의 업무 협의, 법령 입안, 국회 예산 확보 등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그것이야말로 국가 공복으로서 위국애민하는 목민관의 자세로 여겨왔으나, 실상 실물경제를 담당한다는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근무하면서 과연 현장의 소리를 얼마나 듣고 현장의 실상을 얼마나 눈여겨보았느냐는 뼈아픈 반성이었던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문제는 중소기업 수만큼 많다고 할 정도로 복잡다단한 것이어서 지방 중기청장의 정위치는 사무실이 아니라 중소기업 생산, 기술, 수출 현장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부임하는 첫날부터 `일일일사 공장방문`을 시작했다. 새 정부의 유능한 공직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자기 업무에 관한 한 현장을 가보고 현실을 파악하고 철저히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릇 백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은 한푼의 가치도 없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이 새삼 떠오르는 10월이다.

[허범도 부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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